예쁜 마음, 나로 피었어요🌻
도서관에서 민아가 그림책을 하나 꺼내 들어 앉아서 바로 읽기 시작한다. 조금 뒤에 온 영서가 옆으로 가서 앉아 얼굴을 책 쪽으로 내밀어 같이 보자는 동작을 취하자, 민아가 책을 덮으며 “내가 먼저 보고 있었어. 나 혼자 보고싶어.”라고 한다. 명확하면서도 부드러운 어조를 띄는 민아의 거절이 참 인상적이었다.
이제 막 모든 것을 친구와 하고 싶어지는 나이인 7살에게는 이렇게 함께함을 요구하는 다가섬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렇지만 성향에 따라 혼자 있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고, 그 친구와 있으면 불편하다거나 재미가 없어서 같이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 수 있다. 방금 전 민아의 거절은 상황과 마음을 간단히 묘사해 전달하면서도 친구가 그 뒤를 채울 수 있도록 선택을 남겨주는 듯했다. 한 달 전 쯤만 해도 그냥 책을 덮어버리거나 다른 곳으로 가버리며 상황의 맥락을 끊는 방식을 썼던 민아였기에, 또 이렇게 성장했나봐 하는 마음이 들어 감동스러웠던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상황은 좀 더 진지해졌다. 민아가 제안을 하는 짧은 시간에 영서는 고민을 하기보다 이미 자신의 생각을 손으로 옮기고 있었다. 책의 한쪽 모서리로 향한 민아의 손은 책을 잡은 채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이런 영서의 행동을 민아가 고민 반 짜증 반의 표정으로 보며 정적이 흐르고 있을 때, 장면에 윤호가 찾아온다. 윤호는 방금 전의 상황은 모르지만 두 친구의 모습에서 갈등을 느끼고, 이 상황을 해결해줘야한다고 생각했는지 빠르게 다가와 영서의 쪽에 선다. 그리곤 무슨 이유에선지 민아를 보며 “뭐야, 영서가 먼저 보고 있었어!”라고 외친다. 뭐지 싶어할 새도 없이 그 말을 들은 민아의 표정은 급격히 굳었고, 아까 그렇게 부드러운 제안을 한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눈물과 함께 화를 터트린다. “너 왜 그런 말을 해? 윤호야. 진짜로 내가 먼저 보고 있었어!”
윤호가 당황스운지 벗어나려고 다른 쪽으로 한걸음을 내딛는 것을 보고 나도 그 장면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민아가 꺼내는 걸 봤어. 오늘 민아가 가장 먼저 도서관에 들어왔거든. 윤호는 영서가 보고 있는 걸 언제 봤어?” 몰랐을 수도 있는 정보를 전달해주면서 윤호가 본 것의 정체를 묻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이랬다. “어. 어제는 민아 너가 친구 꺼 가져갔잖아. 오늘은 아닌가?...” 옆에서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던 민아는 여전히 높은 어조의 말투로 질문을 이어간다.
"아니 윤호 너는 왜 나를 생각해주지 않고 그냥 영서 편을 드는 거야? 그리고 혼자 보고 싶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게 나쁜 거야?"
"어제 너가 뺏은 거는 맞잖아. 너 그 때 무섭게도 말했잖아."
"그래서 내가 어제는 영서한테 미안하다고 했어.
바로 책도 돌려 주고. 너도 들었지? 그리고 나중에는 부드럽게 말했어.
나도 노력했다고… 나아지려고 하고 있는데 왜… 내 노력을 몰라줘?"
윤호는 민아의 말에 어제를 회상하며 동의가 되었는지 더 이상 아무 말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민아의 말 중에 ‘노력’이라는 단어가 콕 마음에 와닿았다. 민아는 무엇을 어떠한 마음으로 노력한 걸까? 이 노력은 그동안 민아가 알고 있던 많은 노력들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것이었을 것 같다. 생각만큼 한만큼 잘되지도 않고 잘 드러나지도 않아서 더 힘들고 속상하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위로의 대책이 필요했다.
"민아가 부드럽게 말하는 거 선생님도 똑똑히 들었어. 되게 차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민아가 노력한 거였구나?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엄마랑 같이 노력하기로 했는데, 예쁜 마음 만들려고… 노력하기가 힘들어. 내 마음이 더 예뻐지면 친구들도 날 더 좋아할 텐데."
민아의 말을 듣고 꽤 오랫동안 '예쁜 마음'이라는 숙제가 민아에게 담겨있었음이 느껴져 다른 친구들은 교실로 보내고, 둘만 남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난 예쁜 마음을 갖고 싶어요. 예쁜 마음을 갖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리고 얼굴도 웃게 되고 친구들이랑도 싸울 일이 없어요.
그런데 화가 한번 나면 자꾸 커져서 내 모습이 무섭게 돼요. 그러면 친구들이 나를 보는 표정이 '같이 못 놀겠다. 쟤 또 그런다'하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해서... 마음을 가꿀 거에요. 난 하고 싶어요."
민아의 속 마음은 너무 놀라웠다. 엄마랑 고민 상담을 매일 할만큼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었고,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도 정해보았다는 것이다. 사회관계 발달론적으로 보자면 건강한 성장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지만, 민아가 말하는 가꿈이 '오롯이' 민아를 향한 것이기를 바란다. 나를 위해 시작한 길이 갈 길을 잃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한, 약속을 정했다.
갖고 싶은 마음은 민아가, 내 마음의 주인인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 것으로 정하기로.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가는 순간들에서 내가 괜찮은지를 묻고 살피고. 감당하기 힘든 건 하지 않기로 말이다.
관계 문제라 할지라도 무엇보다 내가 나를 더 편안히 알고 이해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친구들의 시선과 반응은 나의 가치를 메길 수 없다. 나의 세계의 주인공은 나다.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것이고 아이를 포함한 모든 개인은 내 중심의 세계를 만들 능력과 가치가 있다. 그 과정에서 나에게 집중하면서 원하는 가꿈의 방향성을 찾아간다면 타인과도 아름답게 어우러질 것이다.
아직 같이 자라나가는 시기인만큼 서로의 생각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어떤 행동이나 마음을 가지면 좋을지 고민이 될 때 듣고 응원해주겠다고 하자, 민아는 자주 이야기해주겠다며!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추후 어머님과 통화를 해보니 예상보다도 더 윤호에게 지지 받지 못했던 지난 스토리들이 있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푸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져 교사로서 둘을 산책할 때의 단짝으로 만들거나, 같은 놀이 안에서 협력하도록 은밀한 작전을 추가로 짜기도 했다.
민아에게서 시작된 나를 위한 아름다운 마음 가꾸기는 이렇게 윤호에게도 이어졌고, 앞으로 하늘반 모두에게 전해질 것이다. 또한 연필이라는 소중한 인연을 타고 이 글을 보고 있는 모두에게도 닿기를 바란다. 나의 마음을 나 그 자체로 편안하고 아름답게 보여주고, 당당하게 활짝 피우면 좋겠다.
by. 동글연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