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서이초 사건이 일어난 지 약 3주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초임교사가 학부모에게 받아온 정신적 고통으로 인해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습니다. 어떤 마음이었을지 감히 알 수 없지만 선생님의 마지막 장소가 교실이었음에 아픈 눈물이 흐릅니다. 교사에게 나의 교실이 가지는 의미를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교실은 저에겐 하늘반과 같은 단어입니다. 이는 아이들과 내가 소속된 반의 이름임과 더불어 우리만 있을 수 있는, 구분된 공간을 뜻합니다. 그 안의 구성원들이 작은 나라를 이루어 나와 우리를 알아가며 함께 살아가는 곳이지요.
그런데 이 ‘우리’가 잘못되며 교실이 끔찍해졌습니다.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이 ‘학부모’라는 이름으로 참여를 하고, 자신이 가진 외부의 권력을 휘두릅니다. 거기에는 돈과 지위가 포함되며 민주주의 사회보다는 오히려 교도소 사회에 가까운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힘의 세기 겨루기가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요? 흔한 흐름대로 가장 약한 자를 찾아냅니다.
‘교사와 어린이라는 ‘우리’를 무너트린 ‘부모님과 어린이 거대집단’은 ‘아동학대’라는 말을 무기로 사용합니다. ‘아동학대법’에 신고되면 무조건 경찰이 출동하고, 원하는 대로 합의해주지 않으면 소송에 이르기에 교사와 학교가 피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증거 없이 심증만으로도 접수되어 적게는 6개월이 걸리고 수년에 이르게 됩니다. 교사에게는 매일의 일상이라 당연히 심적으로 견딜 수가 없지요.
아동학대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범죄입니다. 그러나 아이 입에서 교사에게 “너 아동학대로 신고한다. 다 찍었어”나, “일단 학대 신고되면 출동하는 거 알지?”라는 말이 직접 전해지는 현재의 학교에 정말 옛날의 아동학대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들 중 누구에게도 교사는 이미 위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모두가 인생 최대의 더위를 만났다고 하는 지금, 주말이면 아침부터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이 모입니다. 3번째인 오늘의 집회에는 뜻을 함께하는 5만명이 정부서울청사 앞에 있습니다. 그동안 교권이 어떻게 무너져왔는지, 국민이 알고 있습니다. 하나의 학교 안에도 ‘부모님과 어린이’로 묶인 집단은 언제나 거대합니다. 학교의 힘만으로 이 집단을 감당하기 어렵게 된 지금, 이러한 학교문화가 만들어지는 데 일조한 관련법과 교육체제가 바뀌는 방법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교사라는 직업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마음을 모으는 뜻으로 검은 옷을 입어봅니다. 요즘 부모들이 그렇지하며 부당한 것에 마주하기보다 받아들였던 기억이 있어, 부끄럽지만 함께하고 싶습니다. 학교와 어린이집의 우리가 다시금 ‘교사와 어린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 위로의 손길을 느끼는 곳이 교실이었으면 합니다.
교실이 다시금 의미를 찾고 아이들이 자라나는 곳이 될 수 있게, 절대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게 국가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를, 부모님들은 학교의 울타리가 되어주기를 소망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