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 페스티벌(줄여서 락페)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인터넷의 어떤 영업 글이었다.
티켓 구매부터 모든 공연히 끝난 후 밀려오는 현타. 그럼에도 좋았던 기억만 남아 내년 공연을 기약하며 1년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허들은 굉장히 낮으니 제발 시도해 보라는 글이었다.
드림콘서트부터 UMF까지, 대형 야외 공연을 다녀왔을 때의 추억으로 1년을 살아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겠기에 마음이 동했다. 게다가 인싸들만 바글바글한 일렉이나 재즈 페스티벌과는 달리 친구랑 가도 혼자 놀게 되기 때문에 솔플 난이도도 굉장히 낮고 연령대가 다양하다는 말에 시선을 오래 뺐겼다.
락페를 만만하게 본 것은 아니었는데, 얼리버드 티켓이 이렇게 빨리 매진될 줄은 몰랐다. 사실 제일 첫 번째로 열린 얼리버드 때는 몰라서 예매를 놓쳤지만 두 번째 때는 시간에 맞춰 예매 창에 접속했으나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아니 사람이 너무 안 와서 내년 공연을 기약 못할 정도라더니 대한민국 사람들 언제 다 락덕됐니?
처음부터 누군가와 같이 갈 생각으로 예매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공연 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부산스러웠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공연이 같은 날이라서, 날이 너무 더워서 가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저런 핑계로 취소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아이돌 공연의 티켓은 구할 수 없었고 더운 날씨에 사람들 죽지 말라고 물을 뿌려준다고 하니 가야지. 사실 이젠 티켓도, 셔틀버스 예매권도 환불할 수 있는 기간을 모두 지나쳐버려서 가야만 했다.
페스티벌을 준비하며 복장에 대한 걱정이 제일 컸는데 그동안 다녔던 페스티벌과는 다른 결의 걱정을 했다. 20대 중후반에 다녔던 일렉페 때는 ‘유교걸의 산독기룩 찾기 대회’였다면 락페는 ‘활동성과 기능성 최대치인 복장 찾기 대회’가 된 것이다.
다시 영업 글도 복습하고 각종 락페 후기 팁들을 싹싹 긁어 읽었다. 그중 ‘락페에 갈 때 내게 편한 복장+머리 찾는 법’ 이란 글을 찾았는데 원하는 복장+머리 하고 버피 30회만 해보면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루에 버피를 100개씩 하던 경험이 있던 터라 최적의 복장을 찾았다. 머리는 묶어도 짧은 머리 탓에 아무리 꽉 쫌매도 각설이 머리가 돼버려 빨리 포기했고 옷은 기능성 운동복이 최고란 것을 알았기에 배구 국가대표 유니폼이냐 축구 국가대표 유니폼이냐를 고민하다 사놓고 한 번도 안 입어본 배구 국대복을 택했다.
옷을 고르니 다른 준비물은 빠르게 진도가 나갔다. 꽝꽝 얼린 생수 4병 이온음료 2병(반입 가능한 최대 음료 수량이 6병이다), 깨끗하게 씻어 바로 깨물어 먹으면 되는 천도복숭아와 껍질을 잘 깎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딱딱한 백도를 보냉 가방에 넣고, 쿨 토시와 열 냉각시트, 선 스틱, 모기기피제와 보조배터리, 돗자리 양산을 백팩에 바리바리 싸놓고도 걱정 반 기대 반인 마음이었다.
전국이 무더위로 기승이었던 8월 첫 주 주말, 최고 기온 34.9도 날씨를 뚫고 인천으로 갔다.
셔틀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태양이 맹렬하게 내리쬐어 양산으로 방어했지만 표를 찾고 손목에 밴드를 찾고 짐 검사를 하는 동안엔 양산을 들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모자와 팔토시 덕분에 따갑진 않았다. 문득 종합운동장에 들어가려고 뙤약볕에 민소매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서 있던 일렉페 때가 떠올랐다. 사탕껍질 같은 그 옷들을 입고 뜀박질을 하며 열심히 놀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아득했다.
그래도 바닷가라고 바람이 불면 제법 시원했다. 찜통 같은 더위는 아니어도 가만히 있으면 땀이 줄줄 흐르긴 해서 간간이 부는 바람이 달았다.
공연을 할 때 무대와 가까이 있다보면 앞에서 물을 뿌렸는데 물 양이 있다보니 가볍게 물방울로 흩어지는게 아니라 사람들 머리 위로 철푸덕 하고 바가지 끼얹듯 떨어졌다.
가만히 있어도 탈수기를 돌린 듯 땀이 흘러내렸지만 덕분에 화장실은 가지 않아도 됐다.
관객만 더운 게 아니라 공연하는 밴드들도 더운 건 마찬가지라서 무대에 막 올랐을 때 보송했던 이들이 곡 수가 늘어갈수록 촉촉해졌다. 상기된 얼굴이 더위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공연을 본다는 것이 당연히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는 것이지만, 축제는 신기하게 시각 청각보다 촉각으로 다가오는 게 더 큰 것 같다. 앰프 밑에 서있으면 파동이 온몸을 두드리고 지나간다.
설명하기 힘든 고양된 마음들이 그 시간과 공간에 있던 모든 이에게 점염되어 더욱 큰 함성으로 터진다.
마지막 날 헤드라인이었던 김창완 밴드의 김창완 선생님은 록 페스티벌에 오는 것은 청춘의 스탬프를 찍는 일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알았다. 살면서 지금 이 모든 장면을 곱씹으며 견뎌낼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