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여행
이건 정말이지 효도 여행이 아니라 불효도 여행이었다. 하루에 20km씩 산을 걷고, 입맛에 맞지도 않는 음식을 먹이고, 강제로 돈을 걷어 추가 여행을 시키는데 이게 왜 ‘힐링’이라는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만약 먼 미래에 내 자식이 나에게 효도라는 이름으로 늙은 나를 이곳에 또 보낸다면 그 놈 호적을 파버려야겠단 생각도 함께 들었다.
하지만 이건 아빠의 소원이었다. 중국 장가계에 가족과 가는 것. 아빠는 장가계가 배경이었던 영화 <아바타>를 볼 때도 3D안경이 어지럽다는 핑계로 2시간동안 잠만 잤으면서 왜 장가계가 가고싶었던걸까. 어쩌면 이건 모두 <걸어서 세계속으로> 잘못이다. 중국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장가계는 특별하다고 생각한 아빠는 가족 여행으로 그곳에 가고 싶다며 우리를 계속 졸랐다. 하지만 그의 베필인 엄마는 걷는 여행은 죽어도 싫고, 이런 피곤한 여행은 딱 잘라 별로라며 꼬드김에 쉬이 넘어가주지 않았다. 차녀의 반응은 마찬가지였기에 아빠에겐 딱 하나의 희망만 남아있는 셈이었다. 바로 장녀인 나를 데리고 장가계에 가는 것..
결국 아빠와 장가계에 가기로 했다. 장가계는 역시 패키지란 생각에 일주일간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그밖에 중소 여행사까지 모두 뒤져 최적의 상품을 찾았다. 아무리 가고 싶었던 곳이지만 돌아올 땐 지치기 마련이니 항공사는 중국계나 저가가 아닌 아시아나로 선정. 밤에 출발하는 패키지로 찾아 여행지에서 시간을 벌고, 쇼핑과 추가코스는 최소로, 숙소는 제일 좋은 곳으로 정해 중년을 배려했다.
드디어 장가계에 가는 날, 잔뜩 들뜬 아빠와 나는 엄마의 협찬으로 커플 신발까지 맞춘 상태였다. 게다가 나는 아빠가 이동중에 불편할까 버스에서 갈아 신을 슬리퍼와 한국커피, 목베개, 안마기, 영양제 등등을 모두 준비해 배낭이 휘청휘청했다. 아빠는 나의 준비성 넘치는 모습에 몹시 흡족해하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너랑 장가계에 가게 되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너가 내 딸이라 난 너무 좋아..’
장가계에 도착해 가이드의 소개와 코스 안내를 들은 후,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자 아빠는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그 마음은 하루가 지나자 모두 소멸되고 만다. 앞서 말했듯 장가계 여행은 효도 여행이 아니고 10km씩 행군을 시키는 불효 여행이었기에 아빠는 그날 저녁 호텔 방에서 ‘장가계는 허상이다’며 고량주를 깠다. 말같지도 않은 중국식 한식을 먹으며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던 천자산을 훌러덩 훌러덩 넘어 다니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아빠 말에 무척 공감했다.
여차저차한 4일이 흐르고 드디어 한국으로 가는 날이 찾아왔다. 나는 아빠가 장가계 여행을 허투루 생각할까 싶어 여행 기간동안 매일 매일 일기 쓰기를 종용하곤 했었다. 오늘 무얼 봤는지, 들었는지, 먹었는지, 생각했는지를 적으라 하자 아빠는 초등학생이 방학숙제하듯 꾸역꾸역 일기를 적었다. 호텔 방 탁자에 꾸겨져 앉아 적은 아빠의 일기를 마지막 날 검사해보다 덜컥 눈물이 터질 뻔했다. 아빠의 모든 일기엔 온 가족이 같이 오면 좋았을텐데가 있었고, 그 끝엔 장녀가 내 딸이라 좋은 여행을 마쳐서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이야기가 항상 걸쳐져 있었다.
어렷을 때부터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엔 항상 ‘아빠’가 대답이었고, 스스로를 파파걸로 지칭하는데에 부끄러움이 없으며, 현재도 엄마보다 아빠가 더 좋은 나지만 아빠랑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걱정이 많이 되었던건 사실이었다. 아빠는 늘 직진만 하고, 아무거나 만지고, 일행이 있음에도 자꾸만 사라지거나, 호기심이 많아 늘 모험을 강행하며 무엇보다 까탈스러움이 말도 못했기에 ‘그래! 차라리 아빠를 내 자식이라 생각하자 그럼 참을 수 있을꺼야!’라고 결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린시절의 나도 얼마나 아빠를 귀찮게, 힘들게, 못살게 했던가. 징징대고, 아무거나 만지고, 길도 모르면서 직진하고, 사라지는 모습들은 나였기도 했고, 또 아빠이기도 한 셈이었다. 나는 아빠와 외모도 성격도 너무 똑 닮았기에 엄마는 늘 입버릇처럼 '똑같은 것들’이라며 우리를 놀리곤 했다. 성별과 시대만 다르고, 모든게 같은 아빠에게 이제는 보답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기에 4일정도 아빠의 보모노릇을 하는건 정말이지 별로 힘들지 않았다. 4일이 4개월이 되고, 4년이 된다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겠지만.. 나름 아빠와 여행을 하며 아빠는 생각보다 겁이 많고 소심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아빠는 나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더 돈독히 다지게 되었으니 아무튼간에 효도를 하긴 한거 아닌가.
최근 나는 코로나 덕에 잊고 있었던 보모 여행을 떠올리며 효녀여행을 준비중이다. 여행갈 때만 효녀노릇 하는건 생각보다 가성비가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해본다. 여행 갔을 때의 기억을 에너지삼아 아빠는 계속 살아가니 말이다.
by. 크레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