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부터 왼팔이 아프다. 통증이 시작된 다음 주, 야간진료가 가능한 직장 근처 정형외과에 갔다. 직장에서 제일 가까운 정형외과는 무릎이 아플 때 다녀봤는데 효과를 그다지 보지 못해서, 그보다는 더 거리가 있는 다른 곳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찍고 팔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더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엑스레이에 찍힌 게 없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유추가 시작됐다. 이전의 병력이 등장할 차례. 난 4년 전, 4번 경추디스크가 터진 것은 아니나 튀어나와 신경을 자극한다는 진단을 받은 적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 때와 통증이 매우 달라, 디스크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목이 독보적으로 아팠던 전과 달리 지금은 왼쪽 팔만 아프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름 있는 재단 병원에서 MRI까지 찍고 진단받은 목디스크가 바로 유력한 용의자로 임명되어 그에 따른 약을 처방받았다. 일주일간 먹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어서 병원을 옮긴다.
두 번째 병원은 집 근처로 정했다. 주중은 직장에서 20분 내외의 거리의 야간진료를 보는 곳만 갈 수 있어 옮길 만한 곳이 없었다. 한 번쯤은 유연근무를 해 주시면 참 감사하련만… 서울의 번화가인데 나 같이 타의로 유연근무가 전혀 불가능한 보육교사는 갈 곳이 없다. 이 병원은 365일 문을 여는 곳으로 매일 원장님이 직접 진료를 봐주신다고 평이 좋았다. 다시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았다. 만약 목디스크가 재발했다 할지라도 엑스레이로는 디스크를 볼 수 없기에 내 통증에 대한 다른 근거와 분석을 해주시기를 바랐다.
“대부분의 통증의 이유는 복합적이에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픈 위치를 봤을 때 전형적인 목디스크의 방사통입니다.”
“이전에 먹었던 약이 효과가 없었다고 하니 센 불은 물을 많이 부어야죠. 좀 센 약으로 처방할게요.”
이렇게 나도 목디스크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 병원에 주말에 가서 진료를 받으며 처음에 비해 일상에서 느끼는 통증의 세기가 줄었다. 그런데 바쁜 2~3월이기도 하고 정신적 신체적으로 다사다난해서일까. 팔이 계속 아프다. 대중교통에서 손잡이를 잡고 버티는 게 힘들고, 퇴근길에는 앉아서도 팔을 모으고 있기가 힘들다.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좌석에 난 오른편에 앉고 왼팔은 왼편 의자에 앉을 수 있을 때면 운이 좋은 거다. 통증이 계속되니 부작용이 온다. 성격이 나빠진다. 통증에 둔감해지고 싶은데 나으려면 그러면 안 되는가 싶다가도 자동으로 다시 예민해져서 통증도 신경도 곤두선다.
어제는 2주 만에 병원에 갔다.
“만성통증이 되지 않으려면 2달 안에 잡아야 하는데 벌써 지나고 있네요.”
“자주 갈 수 있는 직장 근처 병원에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일주일에 한 번은 오려고 선택한 병원인데, 두 번은 갈 수 있을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 야간 진료를 두 번이나 하는 곳이 어디 있을지 찾는 게 내 임무가 됐다.
더 무던해지고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 새해 소원이었으나 그보다 먼저 내가 희미해지는 느낌이다. 내 생활이 왜 주인공 마음대로 되지가 않지. 일을 안 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의 흐름이 아니라, 지친 나를 위해 아프지 않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 생각나는 덕목은 뻔뻔함과 대담함.
편안함을 위해서 애쓸 것들이 필요하다. 그냥 얻어지지는 않겠지. 야무지게 병원 진료를 받으려면 나를 둘러싼 제약을 대담히 바라보고 뻔뻔하게 반응해야 한다. 지금 교수들과 전공의가 한 맘이 되어 대학 정원 늘리지 말라는 시위가 길어지고 있는 때에, 환자도 더 크게 소리 쳐야 한다. 동네 병원 등급제가 생기면 좋겠다. '환자 생각하는 곳 지원금 팍팍 주기' 제도를 도입하여 야간 근무 횟수는 등급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걸로 하자. 매일 10시 오픈해서 18시 마감하는 곳은 의사가 자기만 생각하고, 직원도 환자도 나몰라하는 나쁜 곳이니 무조건 9등급이다.오픈 및 마감 시간을 유연하게 해주어야 환자가 올 수 있다는 걸 다들 아는데, 언제까지 의료 시스템은 의사에게 맞춰 있을 것인지 의문이 든다.
18시 퇴근으로 날 묶고 있는 직장도 가만 안 둬야 한다. 핑계는 어린이가 중심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교사들은 어린이들을 두고 잠시도 자리를 비워서는 안된다고 한다. 마음 여린 교사들의 사명감에 언제까지 매달릴 것인지. 사실은 교사도 어린이도 아닌, 원장님이랑 부모님만 '님'이다. 교사 수가 넉넉하면 교사가 중간에 왜 못 나오겠어요. 늘 정책만 있고 지원은 없는 정부와, 총 정원은 줄어도 늘어만 가는 각 어린이들의 보육 '시간' 때문에 교사는 오늘도 달린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에게 힘을 주는 건 ‘뻔뻔함’ 지수. 내가 늘려야 할 목표다.
환경에 잠식되지 않아야 왼팔이 낫는 거야. 나의 쉼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거니까. '챙김'이 아픔에서 구해 줄 능력이 되었으니, 해야 한다.
왼팔아 어서 나아서 우리 이제 인상 쓰지 말고 지내자. 팔에 든 멍들이랑도 안녕~하는 거야. 생각만 해도 너무 좋지? 조금의 뻔뻔함으로 몸도 마음도 더 편하게 이루기를 다짐한다.
건강, 가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