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반에 모두가 다 모이면,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일과를 정하면서 하루를 연다. 간식먹고 놀이하고 밖에 나가고 영어공부도 하고 시간의 순서나 비율 및 우리가 있을 장소를 함께 매일 정한다. 원에서 늘상 똑같은 날을 보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만일 그렇다면 아이들이 그렇게 선택한 이유가 있을 거고 그만큼 좋다는 뜻이기도 하니 재미있게 잘 자라고 있다는 좋은 신호다.
그 중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미션은 가장 빛나는 시간인 오전 놀이시간(약 1시간 30분)을 어떻게 더 반짝반짝 빛이 나고 후회없게 만들지를 촘촘히 계획하는 것이다. 유행하는 MBTI성격 유형에서 보면 계획형이다 아니다 구분짓고 그 안에서의 단계도 많이 나뉘고 하던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심플한 종이에 내 이름을 연필로 책임감 있게 적은 뒤 매일 2~3개씩 하고 싶은 놀이를 적는다. 아이들은 이 때 무척 진지해지고 큰 책상에 동그랗게 모여 앉아 적으니 자연스레 서로의 것에 시선이 가며 갈등이 생길 때도 있다.
빈: (옆에 앉아 있는 율이를 화난 눈으로 보며) 너는 왜 맨날 거짓말해?
율: (빈이의 눈빛을 마주보고) 거짓말 아닌데?
빈: 그게 거짓말인거야. 너 나 따라했잖아. 어제도 따라했으면서. 내가 계획하는 거 보고 썼지? 따라했으면 했다고 솔직하게 말해야지. (자신의 종이를 보이지 않게 가림)
율: 아니야. 나 니 쪽 보지도 않았어. 내가 음악하고 싶어서 음악 쓰고, 세종대왕(언어놀이)은
음… 초성 게임해야지하고 내가 스스로 생각한거야!
다툼이 일어나자 주변에 있던 친구들고 가빈이처럼 자신의 종이를 보이지 않게 모두 가린다. 이건 늘 궁금한건데 5분만 있으면 종이를 보여주면서 무슨 놀이를 할 지 직접 말로 소개하는 시간을 매일 가지는 데도 참...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같이 놀이하고 싶은 사람끼리 공동으로 계획해보기도 하라는 의도를 담은 것이라서 “함께 계획해서 같은 것을 써도 돼. 순서도 협의해보자”는 제안도 하고 있으나 미스테리하게도 모두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허리를 돌린 채, 글자를 적지 않는 다른 손으로는 종이를 가린다.
빈이와 율이는 단짝 친구로 좋아하는 게 비슷해 놀이 시간에 자연스럽게 만나기도 하지만, 일상의 전반에서 서로에게 시선이 습관적으로 가는 사이다. 늘상 주고받는 시선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거부하고 싶었던 걸까? 빈이가 계속 크게 화를 냈다.
빈: 뭐야 내가 하려는 거랑 생각이 똑같아? 말도 안돼. 보고 쓴 거잖아!
마음을 솔직히 얘기해야지. 너무해.
(잠시 뒤) 거짓말은 나쁜 거야... 거짓말을 많이 하면 거짓말쟁이가 돼.
그리고 나쁜 걸 자꾸 하면 나쁜 사람이 된다?!
따라한다고 여겨져서 그 행동이 용서할 수 없는 것인지 오늘만큼은 진정 같이 놀이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미묘함에도 생각의 흐름은 갑자기 거짓말이 되어 빈이를 더욱 화나게 했고,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들도 거짓말은 안된다며 빈이 편을 들어주자 율이는 결국 "나 거짓말 안했어. 나 거짓말 하는 사람 아니야"하며 눈물을 방울 흘린다. 그러면서 이어나온 한마디 "안 따라할게..."
솔직하지 않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담은 말은 거짓말이 되는 걸까? 쓰는 과정에서 "나 너 안따라했어~"라고 율이가 먼저 말하진 않았으니 '말'이라는 존재가 있기도 전에 빈이는 거짓말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건 어디서 느낀 걸까? 경험에 의한 예측인지는 모르겠으나 참 여러 상황에서 거짓말은 아이들에겐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의 시작이 되는 듯하다. 또한 ‘-말’이라는 말로 끝나지만 말 만을 가리키지도 않는다. 나쁜 마음속이자 눈빛이고 행동이고, 어떤 때는 잘 모르겠어서 날 불안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알고 있고 나도 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내 속에 있는 이 거짓말을 어떻게 잘못 놔두면, 내가 어느순간 세상의 아주 나쁜 사람-친구도 하나 없는!-처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다.
율이가 한 마지막 말이 너무 속상했는데, 거짓말쟁이라는 무서운 존재가 될까봐 잘못하지 않은 부분까지 미리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빈이 말을 듣다보니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게 생겼고-원래 말이란 곱씩을 수록 나와의 연관성을 찾아가게 마련이니까-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주었던 자신의 시선에까지 책임감이 들었을 것이다. 결국 교사가 원래 사건의 본질인 내가 하고 싶은 ‘놀이’ 쪽으로 대화의 주제를 이끌고 서로의 마음을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함께 대화를 나눴다.
거짓말은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마음을 아슬아슬 불안하게 만든다. 아이들에겐 거짓말이 '온전한 진실이 아닌 것이라면 모두 다'인 것 같다고 여겨질 때가 많다. 그것이 보이는 현상이든 마음 속의 감정이든지 광범위한 범주를 모두 넘나들고 속해진다. 너무 넓어서 빈이의 잣대로는 선생님도 거짓말쟁이가 될지도 모르는데 어쩌지. 서로의 눈 안에서 늘 진실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지금의 거짓말 프레임이 너무 무겁고 무섭기도할까봐 걱정이 된다.
살짝, 여기저기 빗금을 내어주고 아이들과 벗겨나가야겠다는 다짐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