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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 위에 몸통 모양으로 땀자국이 찍혀 있다. 아무리 닦아내도 얼굴 위로 땀이 흐른다.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하면 다른 생각은 할 수 없고 오로지 동작에만,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점이 좋다.
살기 위해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체력 싸움인지라. 2023년 새해 다짐으로 슬로우 버피 100개를 100일 하겠다며 모두에게 떠들어 댔다. 주변에 입방정을 떨어놔야 야 '지금도 하고 있어?' 하고 물었을 때 그렇다 대답하기 위해서라도 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흘러도 100일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래도 해냈고 스스로 약속을 지킨 사람이 되어 뿌듯했다. 100일이 지나도 계속 버피를 할까? 했는데 역시나 100일로 끝나버렸다. 해냈다는 얕은 안도감과 쥐꼬리만 한 성취감으로 2023년 1분기를 넘겼다.
버피로 얻은 체력이 아까워 유산소 운동과 덤벨 운동을 섞어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하려 노력하고 있다. 운동 전후로 스트레칭하기 위해 유튜브에서 이것저것 해보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 배웠던 재즈댄스가 생각났다. 50분 수업에 웜업만 30분을 하느라 정작 춤은 뭘 배웠는지기억도 안 나지만 쓰지 않는 관절까지 쫙쫙 찢어 놓는 고강도 스트레칭은 지금까지 몸이 찌뿌드드할 때마다 써먹었다. 요즘에는 재즈댄스를 아무도 안 추는지 외국 영상만 남아있었지만 그래도 재생하자마자 익숙한 동작들이 나왔다. 요가나 필라테스식 스트레칭도 좋지만, 박자에 맞춰 몸을 늘리니 이제야 제대로 된 준비운동을 찾은 느낌이었다.
재즈댄스 선생님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에 맞춰 스트레칭을 시작해 윗몸 일으키기로 웜업을 마무리했다. 윗몸 일으키기 코스는 아주 고약했는데, ‘Me Against the Music’ 노래를 틀어놓고 박자에 윗몸 일으키기, 좌우 옆구리 일으키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4분도 안 되는 노래가 어찌나 길던지... 중간에 포기하고 뻗어 있어도 끝나지 않아 일어나는 척인 지경까지 돼야 겨우 끝이 났다. 처음엔 힘들어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지만 1년 정도 하다 보니 힘들어도 할만할 지경은 됐다. 고3이 되면서 재즈댄스는 그만뒀지만 죽음의 윗몸 일으키기 덕분에 복근은 20대까지 남아있었고 운동 습관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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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괴롭히는 일은 재밌다. 자는 시간 빼면 마음이 항상 시끄러워서, 그게 당연해서 내면이 조용해지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나를 괴롭혀왔다.
괴롭히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24/7 365일 평생을 겪어 무엇에 취약하고 어떤 것에 눌리는지 제일 잘 아는 게 나라서. 치사하게 변명이나 도망갈 수 있는 통로를 모두 차단해 두고 부끄러웠던 일,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거나 눈물이 나는 일을 들이밀며 짧게는 침대에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 길게는 온종일을 보낼 수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꽤 괜찮은 시간 소비 방법이다. 대상은 연인일 수도, 아이돌이나 각종 콘텐츠일 수도 있다. 벼락을 맞은 듯 사랑하는 이의 A to Z를 절절히 찾아보고 사랑하다 보면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간다. 사랑하는 마음에 기대어 나를 잃어버리고 상대가 가진 것을 내 것이라 착각 속에 헤매다 보면 기어코 일이 난다. 자의로 끝나면 그나마 괜찮지만 뒤통수 맞듯 쫓겨난 사랑엔 붕 떠 있던 온몸이 준비 없이 현실로 내동댕이 쳐져 상처와 골절로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 것이다.
변태도 아니고… 왜 나는 나를 지우고, 괴롭히지 못해 안달인 걸까?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서, 어렸을 때의 애착 관계가 바르지 못해서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심리학자도 아닐뿐더러 성인이 된 세월에 깨지고 책임졌던 행동들에도 못 할 말이다. 땅굴을 파고 파다 밑바닥이 어딘지도 찍어보고 나를 끊임없이 작아지게 만들면 실패하거나 성에 차지 않아도 ‘내가 그렇지 뭐’하며 넘길 수 있고 자잘한 아주 작은 성취도 큰 위로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나다. 최대 관심사도 내 자신이고.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에 비해 나는 나밖에 모르는 것 같아 노력해 보려고 해도 태어나길 이렇게 생겨 먹어서 머릿속엔 언제나 only me, myself and I인걸.* 게다가 다행이도(?) 단순하기 그지없어서 자고 일어나면 언제 괴롭힌 적이 있었냐는 듯 까먹어 버리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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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규칙적인 운동을 시작한지 반년. 몸에는 쥐똥만 하게 근육이 붙었는진 모르지만 마음에는 착실히 근육이 붙고 있다. 동화 속 왕자님은 아니어도 내 인생을 바꿔줄 귀인을 기다리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평생 붙들려 마주해야 하는 이가 나라면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나만의 속도로 마음에 근육을 붙이며 사는 것.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몰아붙이기 위해 이렇게 연필에 써본다.
*이영지-Not sorry 가사중
by. 기차 연필깎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