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입사한 지 7년 7개월 13일. 일 수로는 2778일째 8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변덕이 죽 끓듯 해서 취미도 취향도 자주 바뀌는 나인데 8년 동안 한 책상을 지키고 앉아있다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일을 사랑하는 게 쉬울까. 회사를 사랑하기가 쉬울까. 둘 다 어려운 일이라지만 개인적으로 일보단 회사를 사랑하는 게 더 '어려운' 사람임에도 꽤 좋은 회사에 다녔다고 생각하곤 한다. 꽤 좋은 사람들, 꽤 좋은 근무 환경, 꽤 좋은 업무 강도, 꽤 좋은 나의 입지 등등이 장기근속을 이끌어 줬다. '여름엔 시원한 곳에서, 겨울엔 따듯한 곳에서 일하는 것이 최고'라고 엄마가 어릴 적부터 일러줬기에 나는 겨울에 따듯하고 여름에 시원한 이곳이 최고의 직장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8년을 일구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그만해야 할 때가 됐다. 그건 내가 이곳에서 고인 물이 되어서 일지도 혹은 고인 물이 될 것 같아서일지도 모른다. 일단... 회사 최장기 근속자가 13년 차고 나는 위에서부터 연차 순으로 무려 네 번째 순서에 달하니 신규사원 눈에는 고인 물이 아닐 수가 없을 터. 더 이상 신규사원을 반가워할 기운도 없는 장기 근속자들을 보며 '꼰대들'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건... 그저 내가 인사담당자이기 때문은 아니겠냐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때 나는 확신했다. '아, 나도 고인 물이구나!'라고.
'그래서 사직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모든 손이 내 사직서를 만류했지만 나는 안식에 다다른 싯다르타처럼 평온하고 온화한 상태에 그지없었다. 퇴사를 목전에 앞두고 보니 지긋지긋한 회사 사람들도 사랑스러워 보이고, 어디다 묻어버리고 싶은 사장마저도 아련해 보일 정도였다. 이래서 다들 퇴사~ 퇴사~ 하는구나 싶다. 퇴사는 모든 병과 번뇌를 벗어나게 해주는 극락이라는 게 참말이구나.
드디어 사직서를 적을 때가 되자 [사유:] 안에 [일신상의 사유]라고 쓸지 길게 진실한 사유를 쓸지 고민했지만 떠올리며 [개인 사유]라고 적어 제출했다. 항간에는 지독하게 굴림 당했으니 사직서를 '굴림체'로 쓰라는 말도 있고, 기왕이면 '휴먼 굴림체'가 낫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퇴사할 때 바탕화면에 '도비는 이제 자유예요'를 써놓고 가기도 하고, 파일을 싹 지우고 간다는 말도 있던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그건 안 하기로 했다.
8년 만에 찾아오는 휴식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다. 조금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일단은 아주 후련한 마음이 크다. 휴식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다음 달에 들려드릴까 한다. 8년 치의 인수인계서를 마무리 하는 게 우선이다. 이 일까지 끝내고 나면 진정한 휴식이 찾아올 것 같다.
by. 크레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