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을 것 같던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요즘.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경험과 수많은 시행착오로 사회생활은 그럭저럭 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여전히 가족과 - 특히, 부모님과- 적정거리 유지에 실패한다.
한 집에 살고 있는 4명의 우리 가족은 엄청나게 다정하진 않지만 평균 이상의 친밀감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서로 간에 무엇을 하는지, 어디를 갔는지, 언제 오는지 등을 너무 궁금해 한다. 같이 사는 한 집의 구성원으로서 서로에게 관심을 둔다는 건 그만큼 애정이 깊다고 읽힐 수도 있겠으나, 이런 생활에 젖어든 나는 ‘가족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혼자 생계를 꾸릴 능력이 0에 수렴할까봐 걱정한다.
매일 엄마가 고심 끝에 결정한 음식이 차려진 식탁에 얌체 같이 앉아서 말 그대로 ‘숟가락만 얹고’ 있다. 세탁기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을 때는 바로 “엄마~ 이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하고 엄마를 호출한다. 밤늦게 귀가하거나 날씨가 영 짓궃은 날엔 지하철역까지 아빠가 차로 데리러 와줬으면 하는 철없는 부탁을 아직까지 한다. (변명하자면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버스를 타고 또 들어가야 한다.) 2살 터울의 여동생은 덕질 메이트이자 집에 와서 또 같이 놀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피로 맺어진(?) 베프 같달까. 내가 그 말로만 듣던 캥거루족이다.
가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걸 불만으로 삼는 건 절대 아니다. 부모님의 챙김은 이제 고마움보다 미안함이 먼저 느껴질 정도인데, 두 분의 그늘 속에 뻔뻔하게 들어앉아 있는 나 자신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어느 시점부터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심지어 면접을 볼 때도, 가족들과 살고 있는지 아니면 독립해서 살고 있는지 물어보는 질문이 부쩍 늘었다. 20대 중후반에는 많이 듣지 못했던 질문 같은데. 이 나이 되도록 아직도 가족 곁에 의존하며 ‘진정한 독립’을 하지 않는 거냐는 핀잔 섞인 질문으로 들리는 건 괜한 기분 탓일까? (독립한 친구들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엄마, 아빠 밑에 있으라고는 한다)
혼자 지레 양심에 찔려하는 걱정과 말과 다르게 실은, 내가 일부러 유예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딱 2022년 연말에도 지금과 비슷한 걱정을 한 아름 안고 2023년을 맞이했는데, 그 당시 진지하게 어플과 인터넷 카페를 통해 감당할 수 있는 예산 안에서 여자 혼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매물을 찾아보았다. 부모의 둥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립을 해야겠다는 의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부동산에 직접 발품을 팔고 은행 등에 이것저것 연락하고 알아보는 것도 엄마, 아빠가 떠먹여 줬으면 좋겠다는 한심한 생각과 함께 모든 것이 귀찮아져 버렸다. 그리고 늘 그렇듯 가족들과 한집에서 살고 있다.
도로 위에서 다른 차와 간격 유지는 매우 중요하다. 너무 가깝게 붙어서 달리다가 누군가가 급정지 했을 때 어느 정도의 사고가 발생할 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가족 관계도 운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난 가족과 너무 가까이 있다. 사이드미러에 적힌 문구처럼 보기보다 ‘더’ 가까이 말이다. 머리로는 이제 간격을 서서히 넓혀야 갑자기 한 쪽에서 브레이크를 밟아도 다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와 다르게 마음은 편안함, 따뜻함, 안락함에 취해 아직도 멀어질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3n에는 의무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가족과의 간격 조정이 머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신호 같다. 이제는 용기를 내어 몇 M만이라도 간격을 넓혀봐야겠다.
by. 연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