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가지 키워드로 돌아보는 2023
가출과 출가 사이에서
9번의 국내 여행, 1번의 해외여행, 22박 23일 여행을 다녔다. 우정을 더 돈독하게 쌓고, 몰랐던 가족의 마음을 듣고, 혼자 잘난 맛에 외국 다니다 된통 당하기도 한 한해였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게 큰 복임을 또다시 느끼며 이제는 부모님 집이 아닌 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때가 진작에 지나지 않았나 싶다. 혼자는 도저히 못 살겠고 동거인은 구해야 할 것 같은데, 별 노력 없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저자 같은 관계가 생기면 좋으련만. 농담 식으로 같이 살자고 친구들에게 말해도 우정도 동거인도 잃어버릴까 조심스럽다. 물론 3n 년 동안 맞춰 놓은 식구들과의 생활방식도 맞지 않아 삐그덕거리는데 평생 다르게 살아온 사람과 같이 산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의, 혹은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는 일은 아직 막연하고 막막하기만 하다. 그래도 가출은 2023년까지만이길, 소심하게 바라본다.
꿈은 없고요 돈 많은 오타쿠이고 싶습니다.
콘서트, 페스티벌등 코로나 때 못 놀았던 한을 풀겠다는냥 열심히 공연을 보러 다녔다. (물론 이중의 팔 할은 덕질이었지만) 인생에 록 페스티벌 한 번쯤은 가봐야겠다는 마음으로 갔던 (연필 9호 참조) 페스티벌에서는 밑도 끝도 없이 인생과 인류애를 채우고 돌아왔다. 12월이 끝나가는 지금 약발이 다 떨어져버려 내년에 또 가서 채워 와야겠다.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이 아닌 현장에서 앰프로 때려 맞는 생음악이 생맥주처럼 중독적이란걸 알아버려 내년에도 통장은 텅장이 될 예정이다.
2023년에 알게 된 좋은 노래 많고 많지만 공연 다니며 좋았던 노래를 엄선(?)해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한번 잡숴봐요들
절망과 무기력감 앞에서
거의 매일 여성이 폭행을 당했거나 살해되었다는 뉴스를 본다. 지금 이순간도 어디선가 여성은 타인에 의해서, 사회에 의해서 죽어가고 있다. 잠재적 가해자 취급에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21년도 기준 범죄자 78.8%가 남성이며 그 중 강력범죄(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는 95% 가 남성이 저질렀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자들이 죽어가는 것에 대해선 너무나 익숙해졌다. 칼로 남자가 남자를 죽여야 세상 무서워서 살겠냐며 치안을 걱정한다. 감히, 여자가 남자를 죽이면 하루 종일 대서특필인 것은 당연하고 신상정보가 빠르게 털리며, 구형과 실형이 비슷하게 나온다.
영화 『바비』가 전세계 박스오피스 1등을 제패하는 와중에 인도와 우리나라만 고전할 때 느꼈던 무기력감은 단시간에 이뤄지지 않았다. 게임 캐릭터의 겨드랑이를 찾다 그깟 손모양이 0.1초도 안되는 시간에 스쳤다고 검수를 하네 마네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사실 이 주제로 친구들과 얘기하자면 정말 서로 얘기하겠다며 일주일 동안 밤을 새울 수 있다. 바비에서 절망에 빠진 바비가 모든 의욕을 상실한 채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는 동안 누가 다 바꿔놓았으면 좋겠다는 대사를 봤을 때 어찌나 공감이 가고 뜨끔하든지. 연필 멤버들과도 ‘누가 바꿔주길 기다리지 말고 함께 바꿔나가자’라는 취지로 시작했던 터라 나아갔나 했었는데 왜 더 뒤로 밀려난 기분이 들까 하며 씁쓸한 침묵만이 맴돈 적도 있다.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가만 보면 대한민국 여성들은 정말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사랑에 빠지면 온몸 던져 그 사랑을 가꾸고 키워내는 사람들이다. 엄마가 아빠 흉을 그렇게 보고 나를 애비의 사랑도 못 알아보는 천하의 효년으로 만들어놓고선, 아빠 욕을 하면 ‘네 아빠만한 사람이 또 어딨냐’고 하는 꼴이 영락없는 남미새의 그것이다.
나라고 다를 것도 없다. 나름 뿌리 깊은 K-Pop 역사 속 수많은 오빠들이 사고를 치고 (사회면에 안 나오면 다행일 지경) 팬들 마음에 대못을 박는 꼴을 보아도 개가 똥을 끊지. 습관처럼, 아니 사고처럼 ‘덕통사고’를 당해 아이돌을 사랑하는 꼴이 누굴 손가락질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비슷비슷하게 대한민국 여성은 실체 없는 남성을 욕하며 ‘우리OO’을 품고 사랑하여 결국 ‘공주’가 되지 못해 서러운 남성들을 키워주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연애와 결혼을 안 하는 것? 내 주변에는 다 하는데요? 하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출산과 출생, 유모차와 유아차를 가지고 징징거리는 것. 찌질함을 숨기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똑똑한 한국 여성들이 스스로 눈을 가릴 텐데… 아! 0.7의 출생률을 유지하면 나라가 소멸하는 건 750년 후의 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맨스는 믿지 않더라도 사랑은 자꾸 믿고 싶으니까. 사랑이 우리를 웃게 하고 살아갈 의지를 만들어 주니까. 세상의 절반을 미워해버리면 삶이 너무 괴로워지니까. 어리석을지 몰라도 배운 게 있으니 대상은 달라지겠지만 2024년에도 제일 잘하는 것을 계속할 것이다. 사랑 말이다.
By. 기차 연필깎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