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통이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지난 주엔 농작물이 자라 곡식이 여무는 24절기 중 '소만'이 있었죠. 여름 햇볕이 시작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차기 시작하는 시기를 뜻하는데, 이번 5월 연필이들이 사회에서 1인분으로 제 몫을 해내기 위해
작지만 큰 고군분투와 맞닿아 있는 것 같아 괜히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필통이들의 5월은 어떻게 끝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귀한 시간 내어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방명록&의견 보내기도 잊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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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와 맞대결 1라운드
1.
“대표님, 이번 주 금요일에 티타임 요청합니다”
앞으로의 커리어와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오랜 고민 끝에 ‘맞다이 다짐’을 대표에게 예의 바르게 공표했다. 일은 정말 ‘일’일 뿐인데, 왜 이것 때문에 내 일상이 무너지고 스스로 존재와 가치에 대해 자문하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매일 부채감을 안고 일어나는 아침을 끝내기 위해 용기를 내보았다.
2.
작년 9월 이 회사에 입사하고 지금까지 꽤 많은 업무를 하고 있다. 큰 범주에서 정부 과제사업, B2B 사업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를 되돌아보면 앞선 업무보다는 대표가 놓치고 있어서 구멍 나기 직전인 (혹은 이미 구멍이 난 곳) 곳을 메꾸다가 지친 내가 남아있다. 적은 인원으로 운영되고 특히 전체 인력 중에 90%가 개발자인 상황에서 대표의 업무를 분담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 없으면 제대로 진행되는 사업이 없겠다 싶지만, 회사라는 곳은 나 없이도 원래 잘 돌아간다. (그래야만 하고) 나 없이도 잘 돌아갈 회사라는 것을 알고 나니 회사 성장에 있어 더 중요한 핵심 인력이 되고 싶어졌다. 이러한 마음에 대표가 불을 참 잘 지피는데, 단둘이 있을 때 뼈 있는 말을 숨 쉬듯 내뱉는다.
연필심님이 어떤 영역에서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일을 잘하는지 모르겠어요. 연필심님은 생각을 어떤 메커니즘으로 하는지 파악이 어렵습니다. 물어보면 그제야 생각하고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연필심 나이대 다른 대기업, 좋은 스타트업에 있는 사람들과 업무 능력 차가 많이 나는 것 같습니다.
내게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묘한 불편함과 긴장감을 느끼고 있는 나를 대표한테 간파당한 것 같은 기분이다. 그의 말 한마디가 나를 평가하는 듯했다. 본인 능력을 의심했고 무쓸모 인간이 된 듯하여 마음이 위축됐다. 동시에, 대표가 바라본 내 모습에 나도 느 정도 동의하는 마음이 커져갔다. 이런 마음으로 하는 일이기에 일이 재미가 없었다. 일을 끝내도 성취감보다는 남은 일을 또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행했다. 못한다고 내가 죽는 것도 아닌데 이깟 일에 과하게 힘들어하고 나를 갉아먹는 듯한 나 자신도 미웠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는 산불 마냥 번질 때, 대표와 맞다이로 브레이크를 걸게 되었다.
3.
함께 카페 가는 길에 대표는 그래서 이제 퇴사하는 거냐고 물었다. 연차를 낸 다음 날이면 대표는 항상 “그래서 면접은 잘 보고 오셨습니까? 꼭 이직은 연봉협상이 된 다음에 가십쇼”와 같은 별로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던진다. 농담도 계속되면 진심으로 여겨진다. 티타임을 퇴사 통보 시간으로 오해한 대표한테 “제가 퇴사하길 바라고 물으시는 거예요?”라고 되물었다. 물론 그건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이미 마음에 박힌 말은 다시 회수할 수 없다. 마주 보고 앉아 지금 업무를 하며 느끼는 어려움, 마음가짐을 비롯하여 실제로 내가 해보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일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동안 B2C 서비스를 주로 해왔었는데 B2B 사업이 주 사업인 이곳에서 내가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표는 자기가 구상 중인 인력 배치와 방향을 답변으로 해주었고, 앞으로 회사 변화를 고려했을 때 1인분의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설명할 수 있는 시각 자료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역시 쉽지 않다.
4.
맞다이 1라운드는 끝났다. 내게 무언가를 요청한 대표가 승자이려나. 혼자 고민하고 마음먹고 대표에게 전달한 용기를 칭찬하기 위해 1라운드 승자는 나라고 생각하고 싶다. 지난 주말 전달한 포트폴리오에 대한 피드백이 긴 장문의 메일로 왔다. 2라운드 매치를 위해 포트폴리오를 보강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과거 내 행적을 다시 들춰보면서 어떤 일을 할 때 힘들었지만 그래도 성취가 있었고 즐거웠는지를 다시금 깨닫는다. 대표가 기대하는 내 역할을 150%로 해내기 위해 부족한 경험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눈에 보였다. 그렇다고 ‘제가 아직 부족한 것 같으니 생각하신 일들은 제가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여자가 자존심이 있지!
회사 내에서 내 자리 찾기는 아직 진행 중이며 대표와 주파수를 맞추는 일도 계속되고 있는 5월. 6월에는 부디 승리의 깃발을 흔들며 나와 맞는 옷을 입고 있기를!
By. 연필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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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의 맛
얼마 전 업계 입사 8년, 직장인 생활 10년만에 드디어 과장을 달게 되었다. 8년간 몸담은 회사가 승진제도도 직위 체계도 없는 독특한 회사였기에 나는 만년사원의 꼬리표를 항상 달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 회사에 평생 다닐 계획이 없었던 나에게 이건 꽤 큰 문제이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이직을 위해 면접을 보러갈 때마다 '왜 아직도 사원이에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기 때문이다. 마치.. ‘능력이 없어서 승진을 하지 못한거냐?’ 라는 눈빛과 함께 말이다. 때문에 오히려 면접장 에서 물어봐주면 해명을 할 수 있어 감사 할 정도였다. 회사의 인사제도를 설명하며 '직위가 사원-팀장-대표뿐이라.. 30년차도 평사원입니다. 저는 성과평가도 항상 A 이상이고, S도 많이 받았답니다! 승진을 못한게 아니라구요..'라며 구구절절 설명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어찌저찌 과장이 되었다. 8년만에 사원을 벗어났으나 삶은 생각보다 나아진게 없었다. 월급이 눈에 띄게 올라간 것도 아니고, 대우가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닌데다 중소회사에서 직책이란 그냥 이름 대신 부르는 닉네임 같은거라서, 상사나 거래처 사람들만 그저 편하게 부를 수 호칭이 생긴 정도랄까. 그럼에도 크‘사원’에서 크‘과장’이 되고, 조직도에서도 어느정도 위치가 올라가자 약간의 부담이 생긴건 사실이었다. 후배들이 나에게 결재를 받으러 오고.. 질문을 하고.. 업무 주재를 하고.. 책임져야할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게 아닌가. 또, 직책을 얻고 싶어 이직을 했다지만 막상 직책을 얻고 나니 내 능력에 대한 검증이나 불안감도 함께 오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후진 내 모습에 사람들이 실망하면 어떡하지.. 이것도 모르냐고 나를 몰아 붙이면 어떡하지.. 영리한 줄 알고 데려왔는데 바보멍텅구리인게 들키면 어떡하지!!’ 하고 말이다! 사원 시절엔 팀장님 그림자에 몰래 숨어 ‘헤헷, 팀장님 저 실수했습니다요~’ 하며 얼버무리곤 했는데 이젠 내가 과장이라 그럴 수도 없으니 졸아 붙은 국물처럼 마음이 점점 짜지곤 한다. 사장도 아니고 꼴랑 과장인데 이러다 차장되고 부장되면 애가 어떻게 되버리는건 아니겠지? 얼마 전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이런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어디가서 9년동안 한군데에서 일했다고 하면 되게 전문가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근데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게 가장 큰 고민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래도 뭔가 몰라도 할 수 있었던 때가 있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모르면 내 바닥이 다 드러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이제서야 인풋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약간 후달려요 지금] 나같은 사람 또 있구나. 세상의 과장들이 다 이런건가 싶어 안도감을 느껴본다. 요즘 나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밤마다 백조처럼 물밑으로 열심히 물장구를 치고 있는 중이다. 퇴근 후 집에 가서 관련 인강도 듣고, 자격증 공부도 하고. 또 대학원도 다니면서 말이다. 과장의 맛은 독하구나!를 실감하며 갓생살다 갓되는건 아닌가 하는 초조함속에 내 부족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부던히 애를 쓰고 있다. 부디 이 독기가 일년은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By. 크레파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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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기린과 짹짹!
5월의 새싹반은 13~15개월 아기 4명이 함께 지내고 있다. 그 중에 2명은 3월에 입소하여 기존 원아로 분류되고, 그보다 생일이 늦은 신입 원아 2명이 추가 입소하면서 4명이 되었다. 원아가 늘어남에 따라 교사가 충원되어야 하기에 비담임 주임 교사였던 내가 새싹반으로 추가되어 교사도 2명으로 늘었다. 기존 원아들과는 서로 낯가림 없는 사이이기는 하나 담임으로서는 많이 부족하기에 모두와 친해지기와 더불어, 신입 중 한 명의 적응을 도맡아 한 달을 지냈다. 사실 나에게도 새로운 적응의 시간이었던 거다.
나와 같이 적응의 길을 걷고 있는 신입은 이제 막 돌이 지난 여자 아기다. 잘 웃고 교사도 친구도 좋아하는 조그맣고 예쁜 아기인 초롱이. 성격이 워낙 밝고 궁금한 게 많아서 여기저기 관심이 많다. 만약 초롱이가 블록 놀이를 하던 중 친구가 하는 악기를 만지고 싶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악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성인에게는 어느 정도의 거리는 공간 차이를 의식하지 않고 전환되나 아기들에게는 ‘이동’이라는 과정 자체가 시간적으로 꽤 소요되기에 일과 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럼에도 역시 거침없고 씩씩한 초롱이는 엉금엉금 기어가기를 택한다. 이렇게 적응 기간 내내 여기저기 기어 다니며 어린이집에서 별다른 제약을 못 느낀 초롱이에게, 올 것이 오고야 말았으니 그건 바로 산책이다!
신발을 신기는데 발이 안 들어간다. 꼭 맞는 신발을 신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걸어 본 경험도 적고, 신발을 신어본 적은 더욱 없기에 발등이 동산처럼 볼록하게 올라와 있는 상태라 그렇다. 이럴 땐 발등 부분을 살짝 눌러주며 발끝이 신발 안에서 최대한으로 펼쳐질 수 있도록 꼼꼼히 넣어줘야 한다. 그래야 몸을 지탱할 수 있는 발바닥 면적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자 이제 소중하게 발을 잘 넣었으니, 아기를 다인승 웨건에 태운다. 맑은 날씨를 느끼며 기분전환을 해주면서 앞으로 한동안은 걸음마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려면 안전한 장소를 확보하는 게 우선, 사람이 많고 예측 불가한 상황이 자주 생기는 곳은 부적합하다. 우리가 갈 곳은 근처 산책로. 오는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걷기만 하는 곳이라 새싹반과 자주 온다.
영차 아가야,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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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 우리 아가, 다리에 힘이 없네.
마치 갓 태어난 기린 같아.
발이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네.
딛을 지, 휘어져야 할지 선택을 못 하네.
시 한 곡조가 뚝딱 절로 지어졌다. 교사의 한 손은 초롱이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몸 뒤를 전반적으로 지지해준다. 그러나 아기가 너무 의지할 정도로 티 나게 지지해주는 건 별로다. 그럼 스스로 허리 힘을 줄 필요를 못 느끼니까. 이렇게 세팅이 된 후 ‘하나 둘, 하나 둘’ 힘 있게 구령을 외쳐주며 왼발과 오른발을 교차로 딛어본다. 점점 나아지고 있는 천재적인 초롱이. 아마 나만 느끼는 거겠지 싶어 뿌듯하기도 하고 더 찬찬히 묵묵히 오래 함께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30보를 걸은 뒤 다시 웨건에 타서 어린이집으로 돌아오는 길. “짹”, “삑삑삐비빅” 산새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계속 나자 주위를 둘러보던 아가들이 앉은 채로 위에 드리워진 나무를 가리키며 “짹!” 따라 말한다. 한 명이 외치자 너도나도, 초롱이도 “째째”하며 웃는다. 이제는 아기새가 되었네. 나도 따라 웃으며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우리 아기 기린이랑 아기 새들, 걷기는 좀 힘들었지만 뿌듯하고 즐거웠지? 내일도 또 내일도 같이 걸어보자. 새들아 내일도 찾아와 줘. 삑삐빅 째짹 삐-
By. 동글연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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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는 승리하리라!
쓰나미 덮친 것처럼 근래 들어 경기가 확실히 안 좋아졌다는 것을 확 피부로 느끼고 있다. 코로나 때 반년 이상 월급이 밀려 결국 퇴사를 했었는데, 그 이후에도 극복이 되지 않았는지 결국 회사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대부분의 사람이 이직을 하게 되었고, 일부 직원은 퇴직금을 몇 개월째 못 받고 있다는 소식을 예전 직장 동료에게서 들을 적이 있다. 특별한 경우라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가까운 지인과 거래처 회사에서 비슷한 상황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작년부터 슬금슬금 경제가 어려워질 테니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 많았지만, 정신 차리기도 전에 이미 코앞을 지나가 있었다. 솔직히 알았다고 해도 어떻게 대비했어야 할까 싶기도 하다. 창피하게도 투자나 경제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본 적 없는 내가 할 줄 아는 건 그저 내 분야를 열심히 하는 것뿐인데… 이럴 땐 참 순수하게 그림만 그리며 살아온 내 인생이 잘못된 걸까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상황이 각박해지면 사람들은 취미나 예술을 먼저 놔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지금 하는 일에 타격이 있을 게 분명해 불안이 더욱 커진다.
일러스트레이터 지인과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지인이 레스토랑에서 투잡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 레스토랑에서 일 하는 직원 대부분이 본업이 따로 있는데, 한국화, 음악 등 모두 예체능 분야였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동료(?)가 많다는 게 어쩐지 머리가 띵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어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그 열정이 멋있지만 한편으론 이 분야에 대해 이해 못 할 사람들은 얼마나 현실감 없는 머저리라고 생각할까 괜한 걱정과 안쓰러움이 들었다. 웃기게도 이 이야기가 나온 시점에 투잡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이번 달에 처음으로 지인을 따라 물류센터 일을 하러 가게 되었다. 자칫 씁쓸해질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괜찮았다. 매일 정답 없는 창작물 작업에 머리가 아팠는데, 오랜만에 아무 생각 없이 단순 육체 노동으로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기분이 나름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해도 생활이 가능하고 성공할 수 있다면 더욱 행복하겠지만 모든 사람의 인생이 이상적으로 흘러가는 건 아니니까… 투잡을 해서라도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지키고 버텨보기로 했다.
오히려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럭키마카잖아!🍀
By. 마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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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호소인
아쉽게도 이 이야기는 정보성 글도 아니고 모험을 떠나 삶이 바뀌는 이야기도 아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사주풀이지만 10년 주기로 흐름이 바뀌는 대운을 보자면 얼추 맞게 변화해 왔다. 돌아보니 대운 시기에 맞춰 학군이 바뀌고 해외를 갔다 오며 새로운 상황에 적응해 살아왔다. 30대의 대운이 바뀌기 전엔 막연히 결혼 하거나 독립 하는 일이겠지 추측했지만 여전히 부모님 등에 빨대를 꽂고 성실히 쪽쪽 빨아먹는 중이다. 10년 다닌 회사도 그대로 다니고 있고 신상에 큰 변화가 있을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돈도 벌고, 모은 돈도 있는데 왜 집을 나가지 못하는 걸까?
객관적으로 냉정히 따지자면 굉장히 운 좋게 유복하진 않아도 없는 것 없이 좋은 조건의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사연 없는 집은 없다지만 어쨌든 나는 부모님의 해피엔딩이니까.
성인이 되자 기숙사나 자취를 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독립에 가까운 둥지 떠나기를 하는 친구들에 비해 여전히 안락하고 편안하게 둥지 생활을 누렸다. 몸집이 크고 머리가 컸어도 편안함을 누리는 대가라 생각하며 둥지에 몸을 욱여넣으니 맞지 않아도 맞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회사가 멀면 그 핑계를 삼아 나갈 텐데……
집에서 회사까진 20분 남짓 걸린다. 남들에 비하면 어처구니없는 이 출퇴근 시간과 회사에 있는 시간에 지쳐 아무 말 없이 그냥 널브러져 있고 싶은 날도 있다. 하지만 돌아가는 곳은 아무도 없는 빈집이 아니라 엄마가 나를 맞아주고 반겨주는 집이다.
짧지만 처음으로 부모님 집을 나와 해외에서 살던 시절, 야간 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가면 그 누구도 나를 기다리지 않고 깜깜한 암흑만이 있다는 것이 너무 충격이었다. 망나니처럼 술을 마시느라 늦어도 엄마는 거실에 나와 졸면서 기다리고 계셨다. 야간 알바를 하고 몸도 맘도 지쳐 돌아간 집에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때로는 귀찮지만 그게 그렇게 위안일 수 없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당연한 것이 영원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로는 부모님의 집에선 나름의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을 당연시하기로 했다. 방안에 처박혀 있고 싶더라도 부모님 말씀을 듣는 것,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보고하는 것 등이 그렇다.
문득 더 늦으면 끝끝내 내 이야기는 펼치지도 못하고 끝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변화에 유연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누구보다 변화를 싫어하는 고집쟁이가 되어있었다. 따뜻한 물에 익어가는지도 모르는 개구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또 익숙함과 안전함이 주는 이득을 버리지 못해 변하고 싶다는 ‘변화 호소인’이 되었다. 이직과 독립 필요성을 토로하며 여러 주변 사람을 괴롭혔다. 그래도 이왕 변화하는 대운의 시기에 저항하지 말고 흐름을 타야겠다 마음먹었다.
청약 도전은 번번이 실패하고, 살고 싶은 동네 시세를 알아보면 부동산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하고 황망한 마음이 들어 다 무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기도 하지만. 그 어떤 이야기도 집을 떠난 주인공이 되돌아 가는 내용은 없다. 걱정되는 일이 한 트럭이긴 해도 온전히 내 취향으로 꾸며질 공간이 방이 아닌 집이 된다니, 기대된다못해 조금 신나기도 하다. 여유 공간이 없어 까마귀처럼 방안에 차곡차곡 쌓아두는 포스터나 각종 예쁜 쓰레기들도 펼쳐 놓을 수 있을 거다.
연필에 독립 성공기를 올려 독립 호소인이 아닌 진정한 독립러가 되는 날이 늦지 않기를 바란다.
By. 기차 연필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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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는 우리를 소개합니다 👭
기차 연필깎이🚂 정갈하고 뾰족하게 고장 없이 연필을 깎아주던 기차 연필깎이처럼 오래 쓸래요. 동글연필💫 아이들 사이를 동그르~ 굴러다니며, 함께하는 일상을 끼적여요. 마카🗒 슥슥- 연필의 유일한 그림쟁이입니다. 작은 네모칸에 제 생각을 담아 보여드릴게요. 연필심✏ 단단함과 무름을 모두 가진 연필심처럼 유연하게 보고 듣고 생각하고,그렇게 살고 싶어요. 크레파스🖍 세상을 크레파스로 다채롭게 그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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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unniespencil@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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