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통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찐만두 체험 기간 다들 잘 버텨내고 계시는지요…!
인류 멸망이 멀지 않았구나 싶을 정도로 불바다였던 여름이었는데 벌써 입추를 지나 처서가 오고 있어요.
(근데 가을이 오다가 길을 잃은 걸까요? 왜 아직도 이렇게 덥죠?)
저는 그동안 더위를 먹어서인지 깊은 심연에 빠졌다가 겨우겨우 헤엄치며 현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 벌이기 선수라 스스로 만든 많은 일거리를 게임 퀘스트처럼 처리하고 있는 요즘, 몇 시간을 주야장천 앉아서 작업하다 보면 오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친구에게 추천받은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6년 된 드라마여서 놀랐어요. 소름 끼치도록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
외모에 관한 이야기이고, 예전에 나온 드라마라 지금 정서와는 안 맞는 부분이 많이 나오겠구나 하고 심드렁하게 시작했는데, 외모지상주의의 문제와 일상에서 느끼게 되는 묘한 차별의 순간을 꽤 정확하고 직설적으로 다뤄서 놀랐어요. 차은우 빼고는 모든 캐릭터가 꽤 현실적이더라고요. 한숨만 나오는 요즘의 콘텐츠를 생각하면 언제 세상이 이렇게까지 후퇴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어요. 넷플릭스 계정이 있다면 한번 보시는 걸 추천해 드려요!
지금보다 나은 예전 드라마 내용을 보다 보니 페미니즘의 힘이 약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차분히 곱씹어보니 이 키워드가 막 떠오르던 시절엔 소수가 강력하게 주장했다면, 요즘엔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로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하루가 멀다고 정신 나간 뉴스가 쏟아져 나와 무력감이 들 때도 있지만, 인식의 변화는 생각보다 사이다 없이 답답하게 진행되는 장기전이라는 걸 여러 경험을 통해 배웠기에, 잠시 후퇴한 듯 보여도 두 보 전진을 위한 한 보 후퇴라 믿으며 오늘을 버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