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하는 9월의 첫 날, 새싹반에 신입 아가로 왔다. 이전에 둘러보기를 하러 왔을 때부터 낯가림이 전혀 없어서 그런지 이제 인생 18개월 차임에도 아가라기보다 더 성장한 어린이 같기도 했다. 민하는 선생님 손도 잘 잡고, 계단 오르내리기도 잘했다. 적응 일정에 맞춰 친구들에게 관심도 보이고 밥을 먹어 본 첫 날엔 잘 먹지는 않았지만 꽤 올라와 있는 야무진 앞니로 씹어서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미 함께 생활하고 있는 다른 4명의 아가들도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모르고 살았던 다른 아가가 자기 집에서 이렇게 하니, 뭔가 알아서 잘 자라 준 것 같아 신기하다.
약 3주의 시간이 지난 지금은 민하의 공식적인 어린이집 적응 기간이 끝났다. 민하는 1층에서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뒤 처음 보는 등원 당직 선생님과 만나 2층에 있는 새싹반 교실로 올라온다. 적응을 잘해주기도 했고 부모님의 직장 일정이 있어 민하는 적응기간 후 바로 오전 간식부터 오후 간식을 먹는 시간까지, 0세에게는 조금 긴 시간을 어린이집에서 보낸다.
그런데 잘 지내주기만 할 것 같았던 민하가 지난 밤 집에서 소리를 지르며 잠을 못 잤다며 어제, 가족 모두 놀란 마음으로 등원을 했다. 적응 기간 중 대개 있는 일이라 부모님을 위로해주었지만, 낮잠 때가 되니 어린이집에서도 자지 않겠다고 거부를 한다. 위로해주며 장난감도 친구들도 모두 코 잠자고 나서 다시 놀이할 거라고 속삭여주자 어느새 스르르 잠에 드는 민하. 그동안 집에서 보내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어 힘이 빠지게 되고, 이를 잠으로 보충해야 하는데 이를 알 수 없는 민하의 몸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어려웠을 거다. 아직 기분이 좋고 할 게 많아 안 자고 싶을 뿐인데 짜증은 어디서 생겨서 왜 내게 되는지 모르겠는 첫 경험을 하고 있다. 적어도 이번 주는 계속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 같다.
영아라고 불리는 0~2세 아가들은 어린이집에 오면 2주의 적응 일정을 통보 받는다. 하루마다 오는 시간과 가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며, 오늘의 과업이 있다. 첫째 날은 선생님과 인사 나누기, 둘째 날은 엄마보다 선생님하고 더 놀아 보기, 셋째 날은 간식 먹기, 넷째 날은 엄마와 잠시 헤어져 보기 등 총 10일 동안 영아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입증된 순서를 거쳐 아가들은 적응을 하게 된다. 아가들은 엄마나 아빠와 이 곳에 처음 발을 들여 놓지만 이내 선생님과 함께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고, 어느덧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 사람을 믿고 어린이집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 짧은 시간이지만 대부분은 10일을 보낸 후에 원래 이 곳을 알고 있었다는 듯 좋아하고 잘 지낸다. 물론 오늘의 민하처럼 몸이 맘 같지 않을 때 종종 힘들어하기도 하나 이 또한 스스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면서 좋아진다. 함께하는 시간들을 즐거움으로 채워주는 선생님들이 있으니까 말이다.
적응 일정은 아가들에게 너무 중요해서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이 중요한 적응 일정이 왜 어린이집에만 있는지 모르겠다. 인생 통틀어서 첫 사회 생활에만 주어지는 거라, 그 시작에 있는 어린이집에만 있는 걸까? 어린이집을 경험 삼아 학교에 가고 학원에도 다니며 점차 성장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결국은 다른 곳이고 그냥 다 다르다. 회사에도 집에도 적응기가 있어서 누군가에게나 제도적으로 마음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을 믿고 어린이로 성장해나간 것처럼 각 단계에 맞는 적당한 적응을 안내받는다면 사회가 적당히 그럼직한 행동을 하며 거리감을 두고 지내는 곳을 넘어서, 상호 관계적인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인 공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민하의 적응에서 한마음으로 도와주는 여러 사람이 있음에도 가장 노력하는 건 아가인 민하인 것처럼, 무엇을 마주하든 그 상황을 풀어나가야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아쉽게도 주어진 적응 일정은 없지만 스스로가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 낯설음과 긴장감에 지지 않을 수 있다. 사회에서도 개인적으로도 앞으로 마주할 새로움을 즐길 수 있는, 나를 잘 아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불어 지금은 민하의 적응이 편안하도록 진심으로 도와주는 좋은 선생님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