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초대장✉️: 태우고, 남고, 빛나다
안녕하세요, 새해가 밝았습니다. 매년 찾아오는 이 순간이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의 용기를 안겨줍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분노라는 뜨겁고도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분노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여겨지지만, 우리를 지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이번 달, 우리는 이 감정을 응원봉처럼 들어 올려 삶에 빛을 더하는 방법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새해 첫 발걸음을 우리와 함께 내딛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5년이 여러분에게 따뜻하고 빛나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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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상당히 예민하다. 작은 일에도 불씨가 피어나듯 쉽게 분노하고 그 불씨는 곧잘 질투와 미움으로 번진다. 최근 나의 불씨는 미디어 속 그들로 향해있다. 카메라 아래서 히히덕 거리는게 꼴보기 싫다는 이유다. 빛나고 매끄러운 사람들의 모습이 내 일상과 반대선에 있다는걸 깨달은 순간. 눈엣가시처럼 자꾸 거슬리기 시작했다.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그래서 우리의 봄은 언제 오는건지.. 생각보다 아득해져가는 목표점에 답답해지는 요즘이다. 응원봉을 옷장에서 찾아 꺼내들고 거리를 나선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추워 죽겠는데 도대체 어쩌자는건지.. 귀 끝이 시리다 못해 칼로 써는 느낌이다. 게다가 예전에 간신히 치료했던 동상까지 재발해 요즘은 발가락에 감각이 없다. 나를 추위 앞에 내세운 사람이 누군지도 알고 있고, 누가 욕을 먹어야 하는지도 분명히 알고 있지만 너무 추우니까 별게 다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인스타 속 너희들이 눈엣가시가 됐다.
새 앨범을 발매한 너희들은 늘 그렇듯 재치있는 말투와 웃음으로 우리의 일상을 응원해준다. 모든게 완벽하고 내 삶의 에너지가 되었던 그 말들이 이제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네. 오히려 유머 뒤에 숨겨진 침묵이 남처럼 들려. 좋아했던 그 목소리들이 지금은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건 왜인지 모르겠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을까? 왜 너희는 그저 웃기만 할까? 다른 사람들처럼 함께 거리로 나서주길 바라는건 내가 너무 염치도 없는 사람 같지? 그래 그건 아닐지도 모르겠네.
사실 나는 내가 진짜 화내야 할 대상이 따로 있다는 것을 정말이지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웬일인지 쌩뚱맞게도 그곳이 아니라 이런 엉뚱한 곳에 화를 쏟으며 감정을 낭비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고있다. 그걸 알면서도 화를 멈출 수 없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 실망스럽기도 하다.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등을 돌리는 기분이 어떤지 아세요? 이건 정말 유쾌하지 않답니다.
결국 나는 너희들의 인스타그램을 숨김 처리한다. 너희들의 재미난 소식을 들어도 나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 응원할 힘이 없다. 내가 느끼는 이 불편함과 원망을 정리할 여유조차 내겐 없을지도. 내 마음은 아직 겨울 속에 갇혀 있어서.. 언제쯤 이 혹독한 계절이 끝나고 다시 봄이 올런지.. 그들을 응원했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이제 영원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린 것일까.
이 모든 혼란 속에서도 정말 중요한 건 아마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힘일 것이다. 이건 놀랍게도 너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하고 있었다. 한때 너희들이 내게 그 힘을 줬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우리가 스스로를 응원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결국 이건 내가 만든 문제도 너희가 만든 문제도 아닌걸 알고 있어서 그래. 그저 계절이 어수선하고 춥기 때문일거야. 언젠가 이 겨울이 지나가고 너희의 노래를 다시 들으며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때는 이 모든 어수선함이 잠잠해지고 내가 지금 느끼는 무기력과 분노가 무겁지 않게 느껴지길.
그때가 되면 너희의 노래도 지금보다 더 따뜻하게 들리겠지.
아직은 조금만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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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유료 팬클럽에 가입한 아이돌의 콘서트에서 10센티미터 남짓한 야광봉을 받았다. 미성년자 순이 시절엔 고유 색 풍선을 흔들면 됐는데, 세상이 좋아지니 별것이 다 좋아진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아이돌에게 관심은 있어도 더 이상 돈을 내고 팬클럽에 가입할 만큼 좋아할 아이돌은 생기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처럼 살아지면 그게 인생일 리가···.
대략 10년 남짓 아이돌판을 떠나있었더니 너무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풍선에서 야광봉이 된 응원 도구는 응원봉이 되어있었다. 삼만 원이 넘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평상시에 얼마나 든다고 외면했지만, 콘서트장에 가니 나 혼자만 맨손을 흔들고 있는 것 같아 소외감이 들었다. 그 길로 응원봉을 구매하고자 했지만, 품절이라 구하기가 이만저만 쉬운 게 아니었다.
쥐똥만한 재고로 찔끔찔끔 응원봉을 팔며 순이들을 호구 취급하는 건 여전해서 하마터면 반가워 할뻔했지 뭔가. ‘포토 카드’ 인질을 앞세워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게 하는 강매 아닌 강매 행위엔 자본주의 체제 아래 엔터 사업이 어디까지 악랄하게 진화할 수 있는지 큰 감명(?)을 받았다.
이제 팬덤 안에서 응원봉을 가질 사람은 다 가지지 않았나 하던 때, 다른 버전이라며 새로 단장한 응원봉을 무려 32% 올린 값으로 내놨다. ‘뭐 그럴 수 있지’ 하기엔 멤버 2/3 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본격적인 군백기를 가지던 시점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화가 났다. 내 돌이 아무리 멋지고 기특할지언정 그 외의 것들은 속 터지는 일의 연속임을 잊고 있었다. 절이 싫음 중이 떠나면 된다지만 절을 떠나지는 못하겠고, 군백기가 끝나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좋아한다면 응원봉은 그때 사도 늦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다 시기상 감사하게도 좋은 뜻으로 그 응원봉을 선물 받았다. 값이 올라 그런지 발광력도 더 좋고 화려한 기능을 탑재한 것을 과연 몇 번이나 들 수 있을까? 했는데 그룹 막내 솔로 콘서트 때도 들고, 군악대 공연에 갔을 때도 들고······ 쥐어 짜내봐도 다섯 손가락 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 횟수였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선 것은 2016년 가을 끝자락이었다. 2008년도 광우병 시위에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고 겁먹은 채 애만 태운 과거가 늘 두고두고 후회였던지라 빠르게 시위 행렬에 합류하였다. 위태로워 보이지만 제 몸을 다 태울 때까지 끝끝내 꺼지지 않는 불꽃을 보며, 진짜로 우리를 보호해 주고 있는 것 같은 이순신 동상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정치 행위를 하는게 묘하면서 벅찼다.
시위는 매주 진행되었고 그때마다 끊임없이 나오는 종이컵과 촛불의 쓰레기에 죄책감에 마음이 불편해질 때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또 안전상의 이유로 촛불 모양의 작은 LED 등을 가지고 나오자는 의견이 스멀스멀 나오던 때, 당시 여당이었던 한 국회의원이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라는 발언이 기폭제가 되어 각자 집에서 꺼지지 않는 것들을 가져오다 응원봉이 나오게 된 것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때 당시 나는 덕질을 떠나 있던 터라 ‘빛나는 무언가’는 없었기에 그냥 단단히 화가 난 민주노총의 횃불 뒤를 따라 우정국로를 걸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나온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2024년이었다. 선진국 체험판이 끝나고 백래시도 정도 것이지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도 기가 차는 마당에 추운 연말 온 국민을 각종 정신 질환을 앓게 한 내란 수괴범을 잡기 위해 또다시 거리로 나섰다. 시위 장소가 광화문이 아닌 여의도인 것이 조금 낯설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탄핵 시위 경험자라고 따뜻한 옷차림, 핫팩, 등산 방석과 꺼지지 않는 불을 들고 나섰다.
집에서 뉴스만 보고 있다간 홧병으로 쓰러질 것 같아 매 주 추운 겨울 밤 거리를 나서다보니 응원봉은 제 원래 의도보다 시위에 이용된게 더 많아졌다.
시위에 나가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현장에는 정말 많은 2030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응원봉이 있으면 들고 나오고, 없으면 없는대로 재기발랄한 소품을 준비해왔다. 물론 2030 남성들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대를 나누어 보자면, 2030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남성은 오히려 5060 세대에서 더 많이 보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이번 시위의 중심이 ‘응원봉 군단’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는 이 ‘응원봉 군단’의 특징을 정리한 글이 화제가 되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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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 글이 퍼져나가던 와중, 이들을 각성시키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한 시사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2030 여성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언급하자, 진행자는 이를 굳이 “2030 청년들”이라고 정정했다. 대부분의 언론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우리 대신 정치적으로 일하라고 뽑아놓은 국회의원들은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지 어디서 응원봉을 구해 어떻게든 보여지는 것만 급급해 보였다.
또한, 분노한 농민들이 트랙터를 몰고 상경하는 것을 경찰들이 해코지하는 것을 막으려 이들이 밤새도록 시위 현장을 지켰을 때조차,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소수자를 지지하는 자들”이라는 엉뚱한 프레임이었다.
물론 소수자를 지지한다. 태생적으로 기득권일 수 없는 성별로 살아가는 이들은 그 설움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소수자들과 연대하고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이 모인 가장 큰 이유, 절대적인 이유는 내란범에게 책임을 묻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비정상적인 나라를 그저 정상적으로 돌려놓고자 했던 이들의 순수하고 고귀한 인류애는 왜 이렇게 이용당해야만 했을까?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비교적 상식적이고, 얌전히 행동하며, 만만해 보이는 이들을 공격하는 일에 이들이 얼마나 익숙한지. 그런 의도와 흐름을 모를 리 없다. 그동안 더러워서 피했던 것들을 이제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그나마 조금은 듣는 척이라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지워져왔는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싸워야 할지 막막하고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희망은 분명하다. 이제 더는 지워지지 않겠다는 의지와 강렬한 목소리가 세상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했다. 차별과 부당함 속에서도 연대하며, 변화를 만들어 온 이들은 이미 세상의 흐름을 바꾼 경력직들이다.
우리의 열정과 끈기는 단발적인 외침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불빛처럼.
이 흐름은 멈추지 않는다.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의 힘은 결국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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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었던 걸 경험하지 않았으면 해서, 나와 같은 실수를 하게 될까봐, 너무 간절히 지켜주고 싶어서 마음이 불안하게 끓어올라. 내 속에서 뜨겁게 터진 무언가가 너를 자꾸 데이게 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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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득하게 꾸준히 해내지 못하는 성격은 유목민처럼 미용실을 옮겨 다니며 자주 머리 스타일 변화를 주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그날도 적당히 짧은 단발에 웨이브 펌을 하고 싶어서 사진을 들고 동네 새로운 미용실에 갔다. 딱 봐도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단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분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단번에 알아차린 것 같아서 믿어보기로 했다. 몇 시간이 흐르고 마지막 샴푸를 마친 뒤 의자에 앉았고, 디자이너는 드라이기로 내 머리를 베베 꼬며 말려주었다. 머리가 건조 될 수록 거울 속 넘어 보이는 그분이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나 역시 이게 아닌데 싶었다. 결국 그분은 "원하는 스타일이 이런 게 아니셨죠…? 내일 다시 오시면 재시술 해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미용실에서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스타일로 해준 것은 난생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 알겠다며 내일 다시 오기로 예약한 후 결제까지 하고 찝찝한 상태로 미용실을 나섰다.
에스컬레이터 옆 거울에 비친 머리는 처참했다. 소중한 주말에 몇 시간을 투자하고 무려 17만 원이나 지불했는데 이런 찝찝한 기분을 느껴야 하나 싶었다. 이 억울함과 화나는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나 자신이 답답하기도 했다. '밑져야 본전이다' 하는 심정으로 다시 미용실로 돌아갔다. 디자이너에게 언짢음을 차분하게 전달하고 (사실은 말싸움으로 번지면 어쩌나 긴장했다.) 재시술이 아닌 환불을 원한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보통 미용실은 재시술을 권하는 편이라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어떠한 이유인지 생각보다 쉽게 환불에 성공했다. 이 날은 난생 처음 대가를 지불한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았을 때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표현해도 괜찮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중요한 날이다.
미용실 일화를 곱씹어보며 요즘 감정 지분율이 높은 '화'와 '분노'에 대해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평화주의자야~'라며 안일한 태도로 침묵하거나 애써 모른 척하며 간과한 일이 얼마나 많았는가. 가족, 친구는 물론 연인이나 직장에서도 굳이 말하지 않고 참고 넘어가면 될 일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게 스스로를 화가 없는 사람, 화를 잘 내지 못하는 사람이라 정의했다. 화가 났다고 인지하기 보다는 그냥 단순하게 불만 가득한 짜증을 내고 있는 건 아닌지 검열했다. 혹은 화내야 할 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화살을 내게로 돌려 생긴 오해가 아니였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필요할 때는 합당한 방법으로 부당함을 표현할 줄 아는 것도 성숙한 어른의 덕목이지 않을까?
공교롭게 최근 나라를 뒤덮고 있는 온갖 천태만상의 사건을 목격하며 지금까지 묵혔던 분노를 "바로 지금이야!" 하고 맘껏 터트리고 있다. 화가 나면 자기 분을 못 이겨 눈물부터 난다는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알겠다. 정치 성향을 떠나 인간의 도리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들을 기어코 하는 사람들을 보며, 분노를 표출해야 하는 때가 언제인지, 누구를 향해 소리쳐야 하는지 분명히 보이기 시작한다. 순간 지나가는 짜증의 감정이 아니라 명백한 대상이 있는 화가 느껴진다.
새해가 되면 무언가는 해결되고 방향성이 보이겠지. 하는 희망과 함께 시작한 2025년이 벌써 3주나 흘러가고 있다. 말벌 아저씨처럼 아침에 눈 뜨자마자 확인하는 뉴스와 간밤에 익명의 사람들이 올린 새로운 정보들(걸러봐야 하긴 하지만...)을 접하며 상쾌함보다는 불쾌함과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가끔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무기력하다. 부조리함과 불합리함에 아무리 화를 내도 바뀌는 것이 없을까 봐 두렵고 무섭다. 하지만 더 이상 모른 척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듯 멍청하게 살면 그 처절한 결과는 나를 겨눔을 알게 되었다. 2025년에는 건강한 방법으로 불의를 지적하고 원인 제공자를 향해 논리적으로 분노할 수 있는 단단한 지혜를 가지고 싶다. 읽고, 쓰고, 배움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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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번의 이직을 했다. 지금 네 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꽤 직장의 변천사가 있는 편이다. 첫 번째 직장을 떠날 때 난 이런 마음이었다. ‘기본기를 다졌으니, 특색 있는 교육도 해보고 싶어!’ 그렇게 확실한 아이덴티티 교육을 가진 찰떡 직장을 두번째로 다니게 되었다. 많은 것을 배우며 지금의 나의 토대가 되었지만 큰 문제가 있었으니, 거긴 엄청난 업무의 양을 교사의 헌신에 의존해왔던 것. 봉사활동인지 모를 일의 고리는 병을 가져와 그 곳을 떠나게 된다.
떠돌다 오게 된 세 번째 직장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요즘 나를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하는 내 선임. 어쩌다보니 네 번째 직장에까지 함께하게 된 그이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 수록 더 그를 모르겠다. 말과 태도의 진심이 어디 까지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점점 더.
복잡하긴 한데 세 번째 직장의 사업이 확장하며 1년 반 전 우리는 같이 지금의 직장으로 오게 되었다. 새로운 곳으로 오느냐 이전 곳에 남느냐에 대해 선택권이 있었던 그는 나름 스윗하게 말했다. “같이 가자.” 거기에 “좋아요”라고 답한 나. 그 결과 죽음의 스케줄을 지냈다. 직장을 옮기지 않았다면 새로운 선임을 만나 힘들었을 부분도 있었을 테지만 그 외의 다른 조건은 모두 같은 곳이기에, 원래 있던 곳에서도 난 잘 지냈을 거 같다. 서로 좋아하고 존중해주던 선생님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뭐 이제는 추억이 되었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간직해야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더욱이 매일 만날 정도의 가까운 업무를 보는 사이라면 사실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무슨 일을 하세요?”라고 물어보고 일로 성격을 어느 정도 예상해보기도 한다. 이 결이 잘 맞으면 인생의 합까지도 잘 맞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중요시 하는 것을 같이 가치롭게 봐주고, 방법은 달라도 서로의 방식으로 고민한 것을 나누다 보면 어느새 발전한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동료도, 선임도 모두 맞지 않음에 슬픔과 화가 섞인 나날들이 반복되고 있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아득하게 반복되는 명확한 문제가 나를 떠나라고 한다. 선임은 더 위의 관계자들에게 인정받고자 늘 일을 벌린다. 그리고 구성원들에게 나눠주는 일에서는 두세발 물러난다. 표면적으로 입장을 비췰 때 대상에 맞춰 말이 바뀐다. 하나의 입장과 교육관을 가졌다고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이를 지키기 위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불일치는, 스스로가 벌린 일로 인해 동료들이 힘들어하면 교묘하게 다른 타겟으로 관심을 돌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내가 될 때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일을 분배해주는 과정에서 내가 말한 한 문장, 교육관련 피드백 중 서운한 맘이 들었을 작은 것 하나하나가 개별 면담시 주요 주제로 떠올랐다는 것을 얼마 전 알게 됐다. 질문을 꺼낸 주체는? 당연히 선임이다. 연차가 낮은 현재의 동료들은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 외에 다른 세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보이지 않는 세력들에게 입지를 다지고 살아남기 위한 선임의 전략은 그들에겐 모르는 저 아래 세계의 것이니. 오해하고 놀아나고 있는 교사들을 탓하고 싶진 않다. 단지 바로 옆 건물에 있는 이전 동료들도 아는 걸 어떻게 이들은 다 모를 수 있는지, 낮은 파악력이 아쉬울 뿐이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의미없는 순환의 세계에서 나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를 위해서어떤 연결 고리를 만들어가야할지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곳에서 마련해야할 토대들이 있다. 일 걱정데 늘 먼저 미뤘던 진학도 부딪혀보고싶다. 발을 둔 채로 다른 길을 바라보는 것을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그렇게 해야 화가 식혀질 것 같다. 계속 성장하는 나이어야, 나도 내가 좋을 테니까. 스스로를 위해, 올해의 시간을 쪼개듯 계속 돌아보며 나아가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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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도 분노를 태우며 자신을 단련하고, 남은 흔적에서 배우며,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빛나는 우리를 만들어갑니다. 이번 편지가 필통이들 마음에 작은 불씨를 남기길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도, 태우고 남고 빛나기를 멈추지 않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다음 달에도 함께해요!
연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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