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연필 끝에서~ 도전 의식 느껴진거야~
안녕하세요, 연필 여러분!
어떤 글이든 첫 문장을 쓰는 일은 늘 작은 도전입니다.
선명한 문장을 떠올리며 연필을 들지만, 쉽게 써 내려가지 않을 때도 있죠.
그러나 결국 우리는 한 글자씩 적어나가며, 도전의 순간을 기록합니다.
이번 달, 우리는 도전을 이야기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챌린지, 한계를 시험하는 무한도전,
그리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라는 깨달음까지.
우리의 글 속에는 멈추지 않는 용기와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연필이 닳아도, 종이가 구겨져도, 우리는 계속 씁니다. 도전의 순간을 글로 남긴 우리는, 이미 한 걸음 내디딘 사람들이니까요.
함께 읽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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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새해가 되면 의례적으로 목표를 적곤 했다. 학생 때는 반에서 N등 하기, 특정 과목의 등급 목표 설정, 공부 시간 관리 등이 주를 이뤘다.
‘손톱 물어뜯지 않기’, ‘너무 나대지 말기’ 같은 항목은 매년 빠지지 않는 단골 목표였다. 목표를 처음 정한 순간부터 꾸준히 포함했기에, 이것이 진짜 목표인지 단순한 연례행사인지 모를 정도로 만성적인 항목이었다. 백수 시절 새해에는 취업이 가장 큰 목표였기에, 이런 습관적인 목표들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 사회인이 되고 보니, 학생 시절보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질 즈음부터 더 이상 실패를 위한 목표는 세우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런 생각도 성공 사례들을 접하며 떠올린 다소 어중간한 결심이었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현대 기술의 발전 덕에 방구석에 누워 유명인의 성공담을 보다가도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3N년을 살아오며 배운 ‘기차 연필깎이 사용법’과 성공담을 적절히 섞어, 실패 없는 신년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했을 땐 무난했는데 해놓고 나니 남들이 대단하다고 하는 우당탕 목표 도전기를 공유해보고자 한다.
- 동네방네 소문내기
유재석&이적 '말하는 대로'이전에 '서동요'가 있었다. 이 소문 내기 기법이 괜히 유명한 것이 아니다. 혼자 되뇌는 것도 좋지만, 입 밖으로 내뱉고 타인이 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무왕은 알았던 것이다. 목표가 이미 만인에게 알려진 이상 타인이 그 길을 인도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주변 사람들을 CCTV화하는 것이다. 모두가 다 아는데, 부끄러워서라도—시쳇말로 쪽팔려서라도—지키게 되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홀수월 금주, 짝수월 음주’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연초에는 주변 사람들이 ‘그냥 마시라’며 변명거리를 찾아주었지만, 이미 큰소리쳤던 터라 체면 차리기라도 해야 했기에 1월과 3월을 넘길 수 있었다. 이후에는 주변에서 ‘아, 홀수월엔 기연깎 술 못 마시지’라며 상기시켜 주었다. 솔직히 워낙 술을 좋아하기도 하고 여름엔 청량한 음료를 찾게 될 테니 7월은 못 넘기겠지- 했는데 '쟤 어디까지 참나 보자'의 눈초리와 -혼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여태까지 해온 게 아까워서라도 끝까지 간다'라는 마음이 적절히 섞여 계속할 수 있었다.
'남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이번만 마시자'는 꾀임이 타인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늘 항상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아는 사람은 나고, 이왕 하는 거 제대로 FM대로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는 단순한 이유였는데 1년이란 시간 동안 진탕 술을 마셨다가, 또 입도 안 대는 한 달을 보냈다가. 아수라 백작 같은 1년을 보내고 나니 맨정신의 내가 꽐라로 들떠서 천둥벌거숭이처럼 떠드는 모습을 떠올리는 게 너무 괴로워서 이 지긋지긋한 모습을 보고도 나를 손절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감사했고,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마치 내가 또 술을 마시면 개다 하는 되지도 않는 다짐과 같은-다짐하는 동시에 깨끗한 신체로 맞이하는 짝수월의 첫 술은 쭉쭉 거침없이 들어가 마치 숙취를 모르던 20대 초반처럼 마시다 누더기 같은 홀수월을 맞이해 죗값을 치뤘다.느낌적인 느낌인진 몰라도 홀수월 정혈통이 짝수월보다 심했던 것 같다.
한 달 금주는 예전에도 성공한 적이 있었다. 1년을 통째로 금주하기엔 너무 쓸쓸해질 것 같았다.-24년엔 자연스레 지인들이 나와 홀수월에만 약속을 잡으려 했다- 동네방네 소문내는 것 외에 또 목표 달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할 수 있는 것만 하기.
- 지킬 수 있는 목표 세우기
‘운동하기’라는 목표는 너무 모호하다. 이러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불편한 마음으로 1년을 보내다가 ‘숨쉬기 운동도 운동이다’며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수강료를 지불해야 하는 운동을 했을 때는 돈이 아까워서라도 꾸준히 나갔기에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홈트’를 결심한 이후로는 귀찮음과 부담감에 금세 흐지부지되곤 했다.
최소한의 꿈틀대던 양심이 어쩌면 살고자 하는 본능이 나를 움직였는데 바로 구체적인 목표와 수치화하기 쉬운 단위를 설정하기였다. ‘100일 동안 슬로우 버피 100개 하기’가 바로 그런 목표였다. 3개월 조금 지난 시점에 끝나는 이 목표는, 일단 100일 동안 완수하면 더 이상 죄책감 없이 1년을 돌아볼 수 있었다. 만약 100일을 채우지 못하더라도, 1년 내에 다시 도전하면 되므로 자연스럽게 운동을 습관화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으로 100일 버피 100개를 성공한 뒤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체크리스트를 지웠다고 해도 100일은 고작 1분기를 겨우 넘길 뿐이고 나머지 3분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불편한 마음만 있어 연말엔 그다지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한 해를 돌아보았다. 슬로우 버피 챌린지를 생각했던 초반에는 신체를 살리기 위한 본능이 나를 움직였다면, 이후에는 정신을 살리기 위해 움직였다. 매일 쳇바퀴 굴리는 반복되고 답답한 일상에 내 의지대로 하는 것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 구슬도 꿰어보고, 뜨개질도 해봤는데 굳은 자세에 건강을 잃고… 정신 수련은 될지언정 건강해졌는가는 또 의문이라 다시 운동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하기로 했으니 하긴 하는데… 엄청나게 오래한 것 같았는데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나있고, 미성년자 시절에 했던 연애 계산법도 아니고 100일을 견뎌내는 것(?)이 마치 천일을 기리는 일처럼 길게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좋아하는 군대 간 아이돌 진급 기념으로 하기, 전역 D-100일 기리기 권법(?)으로 눈 꼭 감고 해냈다. 조금 유치해진 김에 조금 더 동심으로 돌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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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취를 눈에 보이게 표시하기
구체적인 목표 설정의 연장선으로, 성취를 눈에 띄는 곳에 기록하는 것도 중요하다. 챌린지 문화가 확산하면서 스티커 붙이기가 유행한 덕에, 목표를 시각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었다. 마치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서 포도알을 채웠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특별한 스티커를 구매하지 않았지만, 달력에 귀여운 도장을 찍거나 회사 탁상 달력에 업무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X표시를 했다. 하다 보니 빈칸을 모두 채우고 싶은 욕심이 생겨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었다.
올해는 커다란 연력을 구매해 하루가 지날 때마다 X표시를 하고, 버피를 완수한 날에는 ‘B’, 술을 마시지 않은 날에는 하트를,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한 날에는 보라색 박스를 그려 넣고 있다. 이렇게 하면 성취한 것들이 한눈에 보이고, 1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데 효과적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빈칸을 다 채우고 SNS에 자랑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죽어라 한 것도 있다. ‘텍스트힙’에 대해 왈가왈부해도 덕분에 출판 산업은 웃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의도가 불순했을지라도 해내면 어쨌든 성취가 되었다.
- 머리를 거치지 말고 몸부터 움직이기
위에서 말한 것을 아무리 떠들어 봤 자, 살기 바쁘면 목표가 나를 압박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생각이 꼬리를 물면 오히려 더 하기 싫어지고, 이를 외면하고 싶은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기 전에 몸을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이 방법이 가장 어렵다. 나도 여전히 미루고 미루다가 12시가 되기 직전에 부랴부랴 몸을 일으켜 버피를 하곤 한다. 이럴 때는 ‘아이고, 하기 싫어... 도 해야지. 어떡해’ 하고 육성으로 말해버린다. ‘해야지, 어떡해’라고 말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이는데, 일단 몸을 세우고 나면 결국 해내게 된다.
출근 후에도 일정한 루틴을 수행한 뒤 바로 영어 공부를 한다. 손을 씻고, 가습기에 물을 채우고, 마실 물을 챙긴 뒤 20분 정도 문제를 풀고 답을 맞추며 해설을 찾아본다. 모르는 단어는 작은 수첩에 적어 모니터 밑에 두고 짬짬이 본다. 하루하루는 짧은 시간이지만, 1년을 돌아보면 꽤 많은 양이 쌓여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목표까지 지켜내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작은 목표를 하나씩 달성할 때 쌓이는 자신감과 만족감은 기대 이상이다. 내가 내 삶을 의지대로 움직이고 있는 감각이 이렇게 중요한지 알게된 것도 다 내가 지켜낸 나와의 약속 덕분이다. 이게 다 몇 년간 쌓아온 ‘목표 근육’이 꽤 단단해진 덕분 아닐까?
올해도 크고 작은 목표들을 세웠다. 2월의 절반이 지난 지금까지 순항 중이다. 시간이 폭주 기관차처럼 흘러가지만, 목표를 하나씩 해나가며 차근차근 하루를 음미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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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소문난 ‘무도키즈’다. 2006년, 우리가 아는 <무한도전> 체계를 갖추기 전 2005년 오합지졸이었던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부터 역사를 함께했으니 순혈 무도키즈라고 감히 자부한다. 사춘기의 예민한 감성을 <무한도전>식 유머로 치유했고, 마음속 고민거리를 품은 채 해맑은 척 살아가던 대학생 시절에는 시기적절한 특집을 선보인 무한도전으로 시대를 읽었다. 타지에서 영어로 한 주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는 모국어로 이해할 수 있는 웃음을 주는 무한도전으로 풀었다. 고민 많고 우당탕 치열하게 살았던 내 젊은 날을 매주 함께해주었던 친구 같던 이 프로그램은 2018년 3월31일 평범하고 요란하지 않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막을 내렸다.
1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나의 일상에 침투한 이 프로그램을 왜 이렇게까지 좋아했는지 생각해보았다. 출연진이 가진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그걸로 만들어내는 서로 간의 관계성,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매력이 재미있게 드러날 수 있도록 한 편집과 연출은 수많은 무도빠를 양성시켰다. 묵혀둔 이야기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장래희망엔 늘 PD를 적었다. 교양 PD나 라디오 PD가 되고 싶었는데, 자연스레 무한도전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태호 PD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었다. 그동안 방송에서 볼 수 없었던 포맷 (출연진에 대한 냉소적인 자막을 다는 등 )과 의미 있던 기획 특집을 시의적절하게 담아내는 그 능력이 부러웠고 멋있었고 그렇게 되고 싶었다.
PD는 커녕 미디어와 동떨어진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문득 김태호 PD도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매주 도전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프로그램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고, 익숙한 포맷을 반복하기보다 새로운 시도를 거듭했다. 매주 새로운 아이템을 들고 와야 했던 그에게도 ‘무한도전’은 그야말로 진정한 도전이었다.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 새로운 형식을 고민하고, 때론 평단의 냉혹한 평가를 듣고 실패를 겪으며 다시 도전하는 과정이 그의 일이었다. 그가 단순한 연출자가 아니라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회인이었다는 점이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새롭게 다가온다.
노란 뱀의 해에 태어나서 그런가? 노란 뱀의 친구 정도 될 것 같은 '푸른 뱀'의 기운이 벌써 나를 감싸는 것 같다. 작년 이맘쯤과는 확실히 다르다. 나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고, 계단 하나를 올라서기 위한 총알을 장전하고 싶은 막연한 욕망이 인다. 2025년이 변화와 도전의 해이기를 바란다. 평균 이하를 자처했던 출연진들이 매주 그랬듯이, 김태호 PD가 그랬듯이 나도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시도를 용기 있게 해내야겠다.
‘무한도전’ 프로그램은 끝이 났다. 시대정신은 이를 보고 자란 무도 키즈에게로 이어졌다. 무도키즈의 무한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P.S 이번에는 이렇게 마무리 짓지만, 언젠가는 '무한도전'으로 새로운 글을 쓰고싶다 coming s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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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허지웅 작가의 오래된 글을 읽게 됐다. 사실 나에게 허지웅이란 사람은 그닥 호감이 아니었던 때가 있었다. 특유의 시니컬한 발언, 염세적인 표현들이라거나 요즘 말로 T스러운 말들이 내 마음의 빈축을 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그의 삶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난 후의 태도들은 내 마음을 다시 흔들게 됐다. 아파보니 살고 싶어졌다거나.. 사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그간 감사하게 느껴야 했던 것들을 모른체 했던 것에 대한 부채.. 어떤 것에 중심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등등.. 그의 글을 다시 읽고 또 읽을 수록 그가 좋아졌고 꽤나 그의 인생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나는 그렇게 그의 팬이 됐다.
오래된 글의 서두는 이렇다.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해왔다. 지금이 밑바닥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나는 대답했다. 더 이상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때가 밑바닥인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필력에 또 감탄하며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때'라는 말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는걸 인정한다는건 어떤 것일까. 스스로 지금 인생의 내리막에 있다고 인정하며 본인의 처지를 받아드린다는 것은 어쩌면 용기가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존심이 상하면 뭍에 있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면 밑바닥에 있는 것이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은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다. 자존심이 상할 기운도 여력도 마음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밑바닥에 있다.
허작가는 예상치도 못한 투병 생활에서 인생의 내리막을 맛봤을 것이다. 완치에 대한 소망, 아득함, 재발의 두려움, 투병의 고통의 밑바닥에서 느껴지는 환멸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감히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음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런데 그는 이런 말을 한다. 니체를 읽어보라고.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라고.
부끄럽지만 나는 사실 인스타에 매주 고전 문학 소개글을 올리고 있음에도 니체를 읽어본 적이 없었다. 여러 사람들이 니체를 운운하며 사상을 논할 때 나는 모른체 눈만 껌뻑이고 있을 뿐이었다. 지적허영이라는 말이 유행인 요즘, 시간을 허공에 쏟기보다 니체에 쏟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나는 삶.의.밑.바.닥에 있다. 니체를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바로 가방을 챙겨 매고 교보문고로 향했다. 생각을 정리할 겸 집에서부터 걸어가기로 한다. 집에서 교보문고로 가는 길은 공교롭게도 내리막 길이다. 맹렬한 추위를 뚫고 언덕을 내려가 만난 차라투스트라는 예상보다 심각하게 두꺼웠다. 밑바닥을 벗어나기 위한 해법은 역시 두꺼울 수 밖에 없는 것인지. 차라투스트라와 함께 헤세도 한 권, 셰익스피어도 한 권 더 사기로 했더니 가방이 생각지도 못하게 꽉 찼다. 어깨가 빠질 것 같은 고통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니 더 이상 책을 펼치고 싶지 않아졌다. 해법서들을 들고 돌아오는 오르막 길은 너무 무거웠기 때문이다.
이 일은 바로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 차라투스트라는 펼쳐지지 않았다. 허작가님께 죄송하지만 사실 요즘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책 읽기 싫다. 삶을 읽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이 지치고 힘이 든다. 사는 것이 생각보다 버겁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새벽에 눈을 뜰 때 눈을 뜨는 것 조차도 도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누군가는 대단한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지만 누군가에게는 살아가는 것 조차 시도가 되는 것. 그냥 오늘 하루를 간신히 버티는 것들 말이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느낌이다. 이 글을 읽는 나의 지인들이 '크레파스씨 괜찮아요?' 라고 카톡을 보낼 것이 예상된다. 어떡해요. 크레파스씨 우울한가봐. 여러분 저는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이 글을 쓰며, 그저 차라투스트라를 반드시 읽어야겠다 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말하자면 긴 밑바닥에 간 니체가 지옥과도 같은 참혹한 내리막에서 기어 올라와 기어이 필생을 걸고 만든 차라투스트라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요.
인생의 무게만큼이나 두꺼운 차라투스트라를 펼치며, 삶의 가장 기쁜 순간을 반복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추악한 순간마저 얼마든지 되풀이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니체는 차라투스트라가 되어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마음으로부터 어둠이 걷어지고 햇살이 비추어오는 기분이다. 이제 나는 괜찮다. 이 글이 부디 여러분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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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면 뭐라도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달려온 지 5년. 정말 빨리도 깨닫게 되었다. 열심히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더 멋진 내가 되는 걸 미루고 미루다 보니 어느새 30대 중반까지 왔다. 언제까지 이렇게 ‘멋진 나‘를 상상에만 가둬둘 건데? 이젠 진짜 기반을 마련해 두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없지 않을까? 너무 부족한 인풋 탓인지 슬슬 나 스스로에게 한계가 느껴지고, 만족스러운 아웃풋이 나오지 않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멋진 할머니라도 되기 위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말이다.
일단 불안은 잠시 어딘가에 치워놓고 올해는 배움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종종 불안함을 넘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곤 하는데, 그 원인의 대부분은 부족함이 보임에도 보완할 시간이 부족할 때였다. 만약 내가 이걸 알고 있었더라면 하는 후회를 반복하다 보면 난 성취할 줄 모르는 사람인가를 시작으로 끝없는 땅굴을 파기 시작한다. 이런 간극을 조금이라도 채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생각한 끝에 몇 가지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첫 번째는 굉장히 뻔하지만, 영어 공부하기!
나름 어학연수와 유학 경험이 있음에도 외국어 질문에 움츠러드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물론 유학을 다녀온 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으니 그럴 수 있다고 합리화할 수 있지만, 내가 상상하는 멋진 내 모습은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추구미에 맞게, 자신감 향상을 위해 공부하기로 했다.
그런데 혼자서 하다 보니 전혀 압박감이 없어서 나를 채찍질하기 위한 장치로 시험을 보기로 했다. 10월에 유럽 여행 계획이 있어서 늦어도 9월까지는 시험을 치르는 걸 목표로! IELTS만 경험이 있어서 어떤 시험을 봐야 할지 고민 중이다. 아마도 오픽 시험을 볼듯한데 맞는 선택인지, 아니면 더 도움 되는 시험이 있는지 담벼락에 살짝 적어줄 필통님을 기다려본다. 👀
두 번째는 어도비, 프로크리에이트 프로그램의 새로운 기능 적극적으로 습득, 작업물에 적용해 보기!
몇 년째 이 프로그램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매번 익숙한 방식만 사용해서 새로운 기능에 무지할 때가 많은데, 노가다가 될 뻔한 작업이 기술의 힘으로 쉽게 해결되는 충격을 꽤 여러 번 경험하고 깨달았다. 아 역시 배움엔 끝이 없구나! 요즘 AI를 적용한 일러스트 강의와 작업물도 쏟아지는 만큼, 기술을 익히면 자연스럽게 트렌드의 흐름에도 탑승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올해는 내 스타일을 더 확실히 만들기가 목표인 만큼, 그 과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계획이기도 하다.
세 번째는 적어도 한 달에 책 한 권씩은 읽기.
이것 또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동안 책을 거의 안 읽다시피 하며 살았는데, 연필 활동을 하면서 다독하는 기차연필깎이와 크레파스를 보며 반성하게 되었다. 확실히 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 쓰는 글은 표현의 범위가 다른 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목표를 세운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언젠가 동화책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계속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스토리 만드는 법을 배우고, 다양한 이야기를 경험하며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지 찾게 되는 것이 목표이다.
추구미를 실현하기 위해, 내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거창한 이유를 붙였지만, 사실 별거 아닌 계획.
부디 올해는 포기하지 않고 모두 완주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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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기한 심리테스트가 많다. 참여 방법도 아주 간편해서, 시작 버튼을 누른 뒤 밸런스 게임을 10개 가량 하면 바로 어떤 주제에 대한 내가 나온다. 결과를 기다리는 0.5초는 살짝 두근두근하다. 마치 인생게임 프로그램에 들어와 있는 거 같아서.
결과는 정독! 이미지도 대부분 같이 나오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느낌이 팍팍 온다. 재밌고 마치 모르던 나를 알게 해주는 느낌이 들어 고맙다가도 ‘오잉 내가 이렇다고?’ 맘에 안 들 때도 있다. 아예 성향적인 갭이 다른 건 '뭐 하나 잘못 선택했나보다'하며 넘어가는데, 사실 그냥 맘에 안 드는 표현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러면 3번 더 해본다. 왜 중간에 긴가 민가 맘에 걸렸던 질문에서 다른 선택을 해도 결과가 똑같은 걸까. 어찌됐든 나 자신을 돌아본 뒤에 테스트를 마무리한다.
아니 여기서 멈출 수 없지. 혼자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친구들한테 어서 알려야지. 연필이랑 아가들이랑. 테스트에 한마음인 친구들이랑 “오오 너야 딱 너!”를 주고받으면 진짜 끝. 그 과정에서 결과지는 이미지로 저장되지만, 이런 나대로 살면 되니까 다시 보거나 되새기지는 않는 편이다. 아니, 이'었'다. Chill하게 넘어가지 못하는, 문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잘 고장남’ 그리고 ‘자주 뚝딱거림’.
ChillChill치 못한 나. 거슬리는데 맞다. 맞아서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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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뚝딱이가 된 거 비밀인데, 그리고 열심히 커버 해왔는데 심리 테스트가 이걸 어떻게 알아낸 거지. 제목이 심리인데 능력 테스트라도 당한 거 같다. 마치 업무평가보고서에라도 적힌 양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는 나. 많이 찔리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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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뚝딱이는 특히 말을 할 때 빛을 발한다. 생각의 속도를 말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꼬이기도 하고, 반대로 상관없이 말이 그냥 나오며 말의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앞서가기도 한다.
“음….” 이렇게 시간을 끌면 양반. 말 시작은 왜 해 가지고, 말을 이어가야 되는데 별 말도 아닌데 문장의 성분을 못 이룬다. 0개국어활용능력의 소유자가 될 것 같다.
#업무 전달 상황
"선생님~ (여기까지만 잘한다) 오늘 소연이가 가져왔대요. 그 병원. 의사가 주는 거. 의사소견서! 받아서 등원했대요! 소연이가 배 아팠잖아요. 토 해서. 전염성 없다고 하네요! 다행이!! 이거 파일링 할게요~"
말이 불어났으면 속도라도 정상이어야 되는데, 선생님이 듣는 데 3분은 걸렸을 거다. 기억이 안 날 땐 천장을 보는 버릇도 생겼다. 그나마 단어도 기억이 안 나면..... “아 그거 뭐죠. 뭐였죠. (뭐뭐뭐뭐뭐뭐~~ EDM되어도 될 거 같다) 간담횐가(영 상관없는 말) 아니다 오.. 오픈 하우스!” 다른 말을 아무거나 해내고 말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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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이지 않고 싶다. 뚝딱이 안하고 또박이 하고 싶어!
2025년 내가 도전하고 싶은 건, "나 또박이야!" 외치는 것.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아야어여오요오요우으이. 바둑이가 학교에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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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끝에서 시작된 우리의 도전이 저마다의 문장이 되어 남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도전을 부르고 있겠죠.
우리의 뉴스레터는 여러분과 함께 완성됩니다. 읽고 난 느낌, 공유하고 싶은 생각, 혹은 소소한 이야기까지
연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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