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연필은 자연을 생각합니다.
계절이 조금씩 초록을 더해갈수록, 우리는 자연을 생각하게 됩니다. 결이 조금씩 다른 다섯 개의 시선이지만
그 안에는 모두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마음이 담겨 있어요. 당신의 오늘에도, 한 줄기 나무 그늘 같은 시간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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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덥고, 너무 땀이 나서
이제 쉬고 싶어요.”
“그늘에 있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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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폭염이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다는 소식과 함께 이른 더위로 연일 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들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산책을 나온 6~7살 아이들은 주변 공원으로 나온 지 15분 만에 땀을 뻘뻘 흘리며 너무 더워했다. 평소에는 여러 게임과 신체활동을 즐기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모습이었는데, 더위 때문에 그늘이 있는 벤치에 앉아서 쉬거나 어린이집에 얼른 들어가자고 한다. 이 때 지수가 “아프리카는 이것보다 훨씬 덥고 모래바람이 많이 분대. 거긴 물도 없고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워!”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지구온난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지구가 점점 뜨거워져서 더워지고 있다는 결론을 냈다.
“지구온난화를 막으려면 에어컨을 많이 틀면 안 돼요!”
로제의 말에 아이들은 더운 날에도 실외에서 즐겁게 놀이하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본격적으로 주고받았다. 덥다고 무조건 나오지 않다보면 지금의 날씨를 알 수 없고 지구를 돌아보아야한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더위와 실외활동을 피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어 더위를 피하기보다 극복할 수 있는 우리만의 놀이를 개발하면 더 즐겁게 여름을 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실외에서의 놀이법에 대한 모색과 토론이 이어지며 점차 ‘그늘’이 키워드가 되어갔다.
“나무 씨앗을 많이 심어서 많이 자라게 하면
그늘도 많이 생기니까 덜 덥지 않을까?”
그늘에 대해 의식하게 된 아이들은 어린이집 옥상에 그늘을 만들어 날씨에 변화에 적응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산책이나 바깥 놀이를 나갈 때도 주변에 있는 그늘을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늘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 산책 코스를 더 덥지 않게 정할 수 있고 우리가 우리 동네를 더 잘 알 수 있게 되어 좋다는 아이디어였다.
선생님이 우리가 다니는 길을 지도로 시각화해서 보여주자, 산책 시 들고 다니며 그늘을 찾고 자신만의 표시를 지도에 남겼다. 아이들은 시간에 상관없이 ‘늘 있어주는 그늘’을 발견하면 특히 반가워했고, 언제 누가 와도 만날 수 있는 이 그늘을 '힘을 주는 쉼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에 지치지 않기 위해서 그늘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마음은 다른 사람들도 꼭 이 사실을 알고 우리와 같이 좋은 그늘에서 쉬고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알려야 한다고 하며, 이 전에 만들었던 지도를 기반으로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간결하게 볼 수 있는 ‘그늘 쉼터 지도’를 만들게 됐다.
“여기에 가면 의자와 그늘이 있어요, 우리가 만든 그늘 쉼터 지도예요”
아이들은 마음을 담아 만든 우리동네 그늘 쉼터 지도를 갖고 길로 나가, 어른들과 다른 아이들에게 전해주었다. 처음에는 약간 긴장한 듯 다가가기 어려워하기도 했지만 힘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참 아름다웠던 순간이다. 더위를 피하게 해주는 장소에 불과했던 그늘은 아이들에게 점차 사람들의 ‘힘듦과 어려움’을 위로하고 힘을 전해주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힘을 전해주는 주체적인 존재가 된 우리들은 이렇게 '그늘 지킴이'가 되었다.
“다른 동네 친구들한테도 그늘 지킴이가 되자고 초대하는 건 어때요?”
“그늘 지킴이 좋다! 우리가 다른 그늘 지킴이랑 만나면?!
엄청 재밌겠다. 그늘이 막 많아지겠어.”
"또 어떤 그늘이 필요할까? 그늘은 사람들을 도와주니까.
난 더 그늘이 많았으면 좋겠어."
여기에서 그늘은 평소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소외’된 면이기도 하고, 지나친 빛(태양의 열)으로부터 ‘보호’해주며 지구와 사회에서 상생 가능한 방법으로 살 수 있게 하는 해결책이기도 한 다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나에서 너로, 범지구적인 우리와 어려움을 느끼는 소외된 사회까지 아이들의 생각이 뻗어나감이 놀랍다. 아래는 아이들이 그려낸 '돌아봄의 그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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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마음에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고 더해진다면 이 그늘들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미래에 존재할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만들어 갈 그늘이 기후 위기로 인한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감싸는 쉼터이자, 소외된 경험과 존재들에 대한 돌아봄을 담은 안식처가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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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심심치 않게 판매 제품에 '에코(eco)'를 붙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언젠가는 버려질지도 모를 옷이나 신발에도 'eco-friendly(친환경)' 꼬리표가 달린다. 가격은 살짝 더 비싸지만, ‘그래도 이게 지구엔 낫겠지’ 싶은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손이 간다. 약간의 죄책감 회피성 소비처럼 말이다.
문득, '에코(eco)'의 어원을 살펴보고 싶었다. 집 혹은 거처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우리가 자연 속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 먼저 떠올랐다. 결국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공간, 내가 머무는 집과 동네, 그 주변의 자연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지금 사는 동네엔 작은 천이 흐른다. 그 옆 산책길은 아주 넓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계절마다 조금씩 다르게 변하여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쉬지 않고 흐르는 천 양옆을 장식하는 초록빛 풀들 사이로 솟아오른 각양각색 꽃들이 내는 색이 이토록 아름다웠나 하고 감탄한다. 비가 온 다음 날엔 태초의 땅에서 나오는 흙냄새가 구수하며 물 머금은 나무는 더 울창해져 위엄있어 보인다. 산책길 위에선 어린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뛰어논다. 그 뒤로 쫄래쫄래 따라가는 사랑스러운 반려견들이 보인다. 평범한 하루지만, 자연의 리듬을 타며 우리도 흐르고 있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새삼 아담한 자연이 내 생활 가까이에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자연을 지킨다는 말은 어쩌면, 이 산책길과 그 위를 걷는 사람들,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반려견의 풍경이 지금처럼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에코(eco)와 비슷한 소리의 메아리라는 뜻의 에코(echo)라는 단어도 떠오른다. 어원은 서로 다르지만,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 보면, 이 둘이 완전히 무관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자연에 건네는 우리의 행동이나 말이 언젠가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메아리와 같다. 지금 우리가 자연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태도로 주변을 대하고 있는 지가 결국은 나와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이미 자연은 오래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폭염과 가뭄, 폭우 등 이상기후 같은 현상들은 어쩌면 인간이 쌓아온 이기적인 선택들에 대한 응답일지도 모른다. 자연은 하지 않지만 분명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고, 그 반응이 점점 더 가까이, 더 자주 우리 삶을 흔들고 있다. 아직 완전히 늦지 않았다면, 그 되돌아오는 반응이 조금이라도 부드럽고 나은 것이길 바란다. 우리가 사는 곳은 단지 벽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공간만은 아니다. 주위로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고, 아이들이 뛰노는 그 주변까지 모두 포함한 하나의 큰 집, 우리 모두의 터전이다. 에코(eco)를 다시 떠올린다. 집이라는 말. 이 집을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남겨두기 위해,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신중하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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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에는 고정된 자아가 없다.‘
나는 바다가 될 수 있고, 산도 될 수 있고, 날아가는 새도 될 수 있어요.
지금의 내 육체도 잠시 빌린 소중한 것이기에 환경을 보호하는 것 역시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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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다양한 브랜드의 커피를 들고 담소를 나누는 다른 직장인들을 보자면 자연스레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음식물도 싸악 내리고 포션 마냥 카페인을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가 원두커피를 내려 마신다. '인스턴트 커피가 아닌 게 어디냐'며 건강도 지키고 지갑도 지켰다 위안 삼아보지만, 빨대로 쪼옥 올라가는 그 남이 타 준 커피의 맛이 영 자꾸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잠깐의 만족을 위해 일회용 컵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기에 매장에서 컵에서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없거나 텀블러가 없으면 아예 마시질 않는다.
회사에 손님이 왔을 때 편하게 일회용 컵에 다과를 내가라 했지만 차라리 설거지를 하고 또 했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종이컵을 그렇게 쉽게 소비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유리잔에 나가는 게 성의도 있어 보이고 맛도 더 좋으니 신경 쓰지 마시라' 했다.
내가 환경을 위해 하고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고 이제 습관이 되어 뭐가 특별한지도 모르겠다. 일회용품 최대한 안 쓰기가 특히 그렇다. 코로나 시절을 지나오며 마스크를 시작으로 어쩔 수 없이 전 세계가 일회용품 쓰기에 가속도가 붙은 게 못내 미안하여 어떻게 하면 더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하다 면 팬티라이너, 생리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티슈 말고 걸레 쓰기, 돌돌이 말고 실리콘 빗자루 이용하기 등 소소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한다.
코로나 전염 기승이 꺾이고 거리두기도 느슨해질 때 쯤, 구립도서관 홈페이지를 보다 환경 독서 모임 모집 글을 발견했다. 환경에 관련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었다. 거기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겠지? 반가운 마음으로 가입했다.
본격적으로 활동을 해보니,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다큐멘터리도 보고, 관련 활동 소식을 공유하는 모임이었다. 덕분에 환경 운동가들이 어떻게 죽어 나가는지 알게 되었고 꽃이 없어서 개체수가 주는 줄 알았던 꿀벌들은 농약을 드론으로 살포하여 천천히 근본적으로 싹이 말라감을 알았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섬유를 염색하기 위해 끊임없이 폐수를 만들어 내고 또 어느 곳은 산처럼 쌓인 옷더미를 익숙하게 뒤져 도대체 뭔지도 모를 것을 먹는 소들을 보여줬다.
또 멤버들 모두 환경 보호에 진심이라 모임에선 일회용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소소한 꿀팁들도 공유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우려했던 일주일에 한 권 책을 읽는 것은 오히려 괜찮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모임 횟수가 늘어날수록 환경을 아끼자 하는 마음이 커진 것은 확실하지만 동시에 초조해지고 죄책감은 커졌다. 나름 자원을 아끼는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충분치 않아 보였고 이런 마음은 강박이 되어갔다. 좋자고 한 독서 모임이 스트레스의 원흉이 되는 것 같아 탓하고 싶었지만, 목숨 바쳐 온몸을 불 싸지르는 환경 운동가들이 떠올라 '내가 너무 나약한 게 아닐까'하는 마음에 그것대로 죄책감이 들었다. 결국 활동 기한이 끝난 후 따로 모임을 지속하자고 했지만 '살고자'하는 비겁한 변명에 회사를 핑계로 탈퇴하였다.
독서 모임은 끝났지만, 강박은 내 마음속 얕은 수면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일렁인다.
또다시 계절이 지나고, 어김없이 옷을 정리하다 터질 것 같은 옷장을 바라보다 문득 '저렇게 지구를 오염시키는 데 일조해야 하나?' 싶어 2024년엔 ‘아무 옷도 사지 않기’ 챌린지도 했다. 단체 후드티 한 장, 행사용 정장 한 벌을 구매하긴 했지만 나름 성공적인 도전이었으나 2025년이 되자 보상이라도 받겠다느냥 옷을 샀다. (춤 배우러 가는데 셔츠랑 슬랙스를 입을 순 없잖아요…!) 나름의 이유를 대면서 구매하고 만족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계속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오늘도 '애초에 이 가격이었어야 하는' 할인율의 의류 회사 패밀리 세일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다 '안 사면 100% 할인' 이란 말을 떠올리며 창을 닫았다. 돈을 아끼는 것도 맞고, 과도하게 옷을 사지 않는 것도 맞는데 괜히 심술이 났다. 사실 챌린지를 하기 전엔 이런 감정을 몰랐는데, 스스로 만들어낸 규칙이 너무 나를 옥죄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사실 신념을 지킨다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더라도 스스로가 너무 궁상맞게 느껴지고 '왜 이렇게 복잡하게 살지 못해서 안달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단하지 않아도 그냥 내가 살아 가는 곳을 아끼고 사랑하겠다는데 뭘 정의감까지 느껴야하지? 하는 마음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는데 말이다. '왜 연애(결혼) 안해?', '왜 아이 안 가져?' 같은 질문을 턱턱하는 사람에게 '죽을건데 왜 사세요?' 라고 하면 기분 나빠할거면서 모두가 자기와 똑같이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신경 쓰자니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나는 절약가도, 환경 운동가도 아니다. 그저 내 삶이 온전하게 나의 것이길 바라는 사람일 뿐이다.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급발진'을 하였다. 글의 전개가 너무 급작스럽다는 연필 친구들의 피드백을 듣고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고민하다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창을 껐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슬로우 버피를 다 하고 바닥을 정리하기 위해 실리콘 빗자루로 머리카락을 모았다. 그래도 땀 때문인지 영 바닥이 찝찝해 걸레를 찾다 귀찮아서 물티슈를 꺼내 닦았다. 바닥을 닦다 문득 '이렇게 편리하니까 사람들이 다 쓰지. 그리고 애초에 얘가 만들어진 것도 사람들이 쉽게 쓰라고 나온 거라고!' 하며 또 그러데이션처럼 분노 게이지가 쌓였다. 그러다 문득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으니 그 분노가 내 안에 고인 것임을 깨달았다. 당연히 편한 삶을 살고 싶지만 나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남을 흉볼 순 없으니까 스스로만 괴롭히고 살고 있었는데 남이 조금만 입을 대면 봇물 터지듯 분노가 폭발했던 것임을 알았다.
그럴 때면 나름의 숨구멍을 찾아간다. 바로 할리우드 스타들의 절약 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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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료 20억 받는 톰 히들스턴도
보풀 잆는 코트를 입는다
자고로 외투란 따뜻하면 그 기능을 다 하는 것임을 |
6대 제임스 본드였던 다니엘 크레이의
마지막 007 시리즈 '노 타임 투 다이'
출연료는 357억이다.
하지만 그도 저렇게 너덜한 가방을 메는데 내가 명품 가방을 갖는 건 지나친 과소비 아닌가?
회사에 다닐 때 메는 것은
본죽 쇼핑백이면 충분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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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우 말고도 정말 웃긴 밈이 많으니 필통 여러분도 한번 찾아보시길 바란다.
4월부터 여름 시작일 것이란 어마어마한 뉴스를 보고 두려움에 떨었는데 정작 찾아온 봄은 지구가 인류에게 주는 마지막 자비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날씨였다. 청명하고 쌀쌀하며 깨끗했다. 그래도 좀 오래 춥네? 하며 산책하다 고개를 드니 장미가 제 존재를 뽐내고 있었다. 5월이 된 것이다. 제 등장과 맞지 않는 온도 속에서 아랑곳 안 하고 나온 꽃잎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징징거리지 않고 제 할 일을 해내는 것. 그 누가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자기 속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나는 아주 오래 이 당연한 위로를 오래 받고 싶기에 계속 유난을 떨며 살려 한다. 지치는 날도 포기하고 싶은 날도 또다시 올 것임을 알지만 그 역시 다시 자연에 치유받을 것임을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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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주 아주 아주 지독한 병이 하나 있다. 원님이 와도 못 고치고 나랏님이 와도 못 고치는 병. 그건 바로 결벽증이다. 나는 만성 결벽증 환자다.
주말이 지나고 출근을 한 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물티슈로 책상을 닦는 일이다. 괜히 주말 사이에 먼지라도 쌓였을까 물티슈를 두 어장 뽑아 벅벅대며 책상을 닦는다. 모니터도 닦고, 서랍 주변도 닦으며 닦을 수 있는 곳은 최대한 먼지를 훔쳐낸다. 청소 후 말끔하게 손을 씻으며 본격적인 하루는 시작된다. 결벽증 환자는 업무 중 간식도 함부로 먹지 않는다. 혹시나 비싼 기계식 키보드에 과자 부스러기라도 들어갈라 키보드 위를 커버로 덮어두고 과자는 쏟아지지 않게 늘 정리해가며 먹는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약간의 휴지는 사용된다.
음식을 먹으면 콧물이 나는 비염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결벽증도 특이한데 웬 이상한 비염이라며 여러분께서 질색하시는게 눈 앞에 그려지지만.. '혈관운동성 비염' 이라는 기가막힌 이름을 가진 이 병은 어떤 음식을 먹어도 콧물이 나는 다소 추잡스러운 질환이다. 2대째 비염의 저주에 걸린 나는 냉면을 먹어도 코를 훔치고, 쌀밥만 먹어도 콧시울이 얼큰해지는 사람이 되었다. 덕분에 식사를 할 때면 늘 남들보다 배로 많은 휴지를 활용하며 휴지 탑을 만들곤 한다. 오늘 점심도 늘 그렇듯 휴지 탑이 생겼다.
점심 식사를 마치면 커피를 한 잔 때려줘야 진정한 직장인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은 날씨도 좋으니 산책을 해보기로 하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받아 들고 더운지 추운지 모를 아리까리한 5월의 계절을 따라 청계전을 쭉 걸어본다. 예전엔 청계천에서 악취가 난다니 뭐라니 말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은 잘 모르겠네 라는 생각을 해보며 짧은 점심시간을 즐기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 역시 손을 씻고 다시 오후 업무에 집중한다. 이래저래 정신없이 일하고나면 벌써 5시, 퇴근을 해야 할 때다.
결벽증 환자의 저녁 일상은 매우 바쁘다. 특히 오늘은 창문을 타고 넘어온 꽃가루를 다 닦아내는 목표를 세웠다. 우선 바닥 청소를 하기 전에 가구들 위에 쌓인 먼지를 치워주기로 하자. 얼마 전 새로 산 청소포가 아주 요물인데 정전기를 활용하여 먼지를 공중에 날리지 않고 말끔히 흡수해주기 때문이다. 티비부터 가구장, 책등까지 싹 쓸어주니 사라지는 먼지만큼 기분이 좋아진다. 내친김에 제대로 청소를 해볼까 싶다. 직구로 구매한 캡슐 세제를 팍팍 넣어 빨래를 돌려두고 세탁기 박자에 맞춰서 먼지를 팡팡 턴다. 청소기도 다 돌렸으면 스팀 청소도 시작! 화장실도 빼놓을 수 없지. 얼마 전 코스트코에서 막대기에 꽂아서 물만 묻히면 세제가 저절로 흘러 나오는 기능성 스펀지를 구매했다. 세면대부터 바닥까지 박박 닦고 변기에 홀라당 흘려 보내면 아주 손쉬운 요망진 녀석이다.
마지막 미션인 건조기 마침을 기다리며 맥주 한 캔까지 곁들여 먹으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싶다. 아, 맞다. 학교 과제도 해야하는데! 시간도 머리도 부족하니 지피티를 급하게 켜서 제 2의 뇌로 가동시킨다. 지피티야 고맙다. 고맙다 반복하며 무아지경이다. 벌써 열두시. 이제 잘 시간이다.
환경이란 주제를 글감으로 던지며 무엇을 쓸까 고민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른건 내 자신이었다. 오늘 내 하루 안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일회용품을 소비했을까. 그래서 하루 동안 쓴 쓰레기들을 모아보았다. 손씻고 사용한 핸드타올, 탕비실에서 마신 캔 음료, 아침에 먹은 과채쥬스, 동료와 점심 때 마신 아메리카노, 빨대, 물품을 구매하고 받은 봉지, 그리고 그 밖에 보여줄 수 없는 은밀한 쓰레기 등등이나 까먹고 모으지 못한 것들까지. 모아보니 한 봉다리는 거뜬했다.
게다가 청소를 한다는 목적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환경 호르몬과 생활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캡슐세제, 청소포, 건조기시트, 세탁이염시트, 일회용 화장실 세척 솔, 크린타올 등등.. 집안은 깨끗해지지만 그만큼 지구는 더러워진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깔끔떠는건 좋은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기타 불미스런 쓰레기들을 어떻게 줄여나갈지 고민해본다. 우선 기차연필깎이를 따라 일회용 핸드타월을 대신할 자그만한 손수건을 들고 다니기로 했다. 마침 다니는 성당에서 작은 핸드타월을 나눠줘서 다행히 추가 소비는 막았다. 수건으로 손을 닦으니 촉감도 부드럽고 향기도 좋아 기분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만큼 내가 사는 지구도 기분이 좋아져야할텐데. 이제 다음 스텝으로 어떤 쓰레기를 줄이면 좋을지 생각해보는 중이다.
지구를 생각하며 깔끔하게 사는 법. 뭐가 있을까요? 이 글을 읽으시는 결벽증 동지 분들 중에 좋은 조언이 있다면 꼬옥 담벼락에 남겨주세요. 함께 깔끔떨며 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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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셀프' 자랑 시간 (하지만 쓸데없는)✨
안녕하세요. 크레파스 입니다! 이번 달 셀프 자랑자는 바로 저 입니다!!! 아무도.. 아무도.. 이 코너를 이용해주시지 않아서요..
저라도 저를 자랑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노래방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무우우우우척 노래방을 좋아한답니다. 노래도, 춤도, 술도 좋아하니 사실은 음주가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야겠지요.
저는 노래를 듣는 것보다 부르는걸 더 좋아하는 이상한 취향의 소유자인데요. 그런 저의 애창곡은 바로바로 한혜진 (모델아님) 의 갈색추억!!!!!!!!!!!! 이랍니다.
이 노래 아는 사람.. 있을라나.. 모르겠네요. 아무튼 저는 참 좋아합니다. 슬플 때도 기분이 좋을 때도
항상 이 노래를 부르며 싸늘한 찻잔을 떠올리곤해요.
얼마 전 친구들과 파티룸을 빌려 노래경연대회를 했는데요. 총 3라운드로 펼쳐진 경연이었는데요. 1라운드 첫 곡으로 아이브의 after like 를 춤과 함께 비장하게 선보였거든요? 근데.. 80점도 못 맞은거에요. 힝. 춤에 너무 집중했던 탓일까 ^^;; 자존심이 구겨졌기 때문에 2라운드에서는 본때를 보여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와-일드카드 '갈색추억'을 꺼냈죠!!
그리고 결말은!!!!!!!!!!!!!!!!!!!!!!!!!!!!!!!
100점!!!!!!!!!!!!!
자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점수지요? 우하하. 바로 우승 했답니다. 노래방을 좋아하지 않으시는 분들이라도 음악은 들으시겠죠? 그렇다면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은 있을꺼예요. 그게 뭔지 궁금하네요!! 담벼락에 꼬옥 들려주쎄요!
광고문의 : unniespencil@gmail.com 혹은 패들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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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소리보단 속삭임으로, 정답보단 마음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해봅니다.
연필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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