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편지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공기 냄새가 느껴지는 계절이 되었어. 어느 곳에서 태어나 우리를 만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2011년 3월 25일 - 네가 태어난 날짜는 알고 있지. 속절 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2023년 3월 25일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천진난만한 동그란 눈망울과 콩으로 박아 놓은 것만 같던 검정 코가 완벽한 비율을 이루고 있던 너. 첫 만남을 기억해. 너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잔뜩 웅크리고 구석에 조용히 있었어. 왠지 기죽어 보이는 모습에 어디 아픈 곳이 있는 건 아닌지 많이 걱정했지만 괜한 기우였지. 너와 열두 번의 계절 바뀜을 경험하며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자기 의사 표현이 확실한 아이인 걸 알게 되었어. 그렇게 너는 고집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운 막냇동생이 되었지.
스무 살이 넘어 만난 운명처럼 만난 막내 덕분에 우리 가족은 완벽한 행복부터 순수한 슬픔까지 알 수 있었어. 각자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식사하며, TV를 같이 보며 한 번 더 박장대소하고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었던 건 너 때문이었어. 앞으로는 우리 4명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재잘거려야 겠지. 지지고 볶고 징그러울 때도 있지만, 누구보다 건네주는 위로의 힘이 가장 강한 것이 또 가족임을 알기에 우리 4명은 의연하게 이 시기를 견뎌낼 거야.
뻔하지만 이 얘기도 하고 싶다. 지금 주어진 이 시간의 소중함을 너로 인해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어. 1분 1초라도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 그 순간들을 말이야.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들과 내뱉었던 수많은 약속이 스쳐 지나가. 우리는 유한한 시간 속에 살면서 왜 무한한 시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할까. 네가 보내온 하루하루가 어땠을지 궁금해. 인간보다 빠르게 흐르던 너의 하루 속에는 우리 가족으로 인해 어떤 감정들로 채워졌을까. 욕심을 부려보자면 부디 행복했던 감정으로 가득하기를.
예르야. 네가 좋아하던 산책길을 걸으며 생각해. 흩날리는 벚꽃을 머리 위로 맞으며, 한낮의 무더운 땅의 기운을 받으며, 바스락거리는 낙엽 더미의 소리를 느끼며, 차갑게 쌓인 눈을 피해가며 이제는 너와 교감할 수 없지만, 꿈속에서는 바다를 수영할 수도, 하늘을 날 수도, 어쩌면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도 있으니 그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다고.
그러니까, 나는 너와 가족으로 지냈던 지난 모든 시간과 너를 그리워하는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에 감사해할 거야.